김선태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5월로 예정된 가운데 북핵 문제에 관해 세계적 명성을 지닌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발언이 자주 인용되는 중이다.

▲ 김선태 편집위원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제안이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한 일보 전진”이자 “핵무기를 발판 삼아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전술”로 볼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미국은 “이 기회에 명시적인 북핵 폐기 선언을 이끌어낼 것”을 주문한다.

실은 빅터 차 석좌의 입장이 이전에 비해 미묘하게 변한 것이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2012년에 출간된 방대한 분량의 저서 ‘불가사의한 국가’에서 그는 기본적으로 북미 대화 무용론을 설파했다. 이 책에서 그는 “북한은 영원히 핵무기를 원한다”며 “미국은 대화를 통해 북한이 원하는 것을 절대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 썼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대북 고립화를 밀어붙여야 하며 그로 인해 발생할 북한의 붕괴에 대비하라고까지 조언했다. 대체 지난 6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스라엘, 유대 자본, 트럼프

북핵 문제를 대하는 미국 정부의 입장은 그들이 유대계 자본의 영향 하에 있다는 점으로도 짐작 가능하다. 이와 관련 저자는 미국의 대북 핵 협상 과정을 다루면서 먼저 이스라엘을 언급하는데 여기에는 ‘수평적 핵확산 위협’이라는 다소 엄중한 배경이 있다.

▲ 『불가사의한 국가』 = 빅터 차 저. 김용순 역. 아산정책연구원 간. 704쪽.

지구상에서 북핵을 가장 두려워 할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이스라엘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실제 경험으로 확인된다. 2007년 9월 이스라엘은 전격적인 기습작전을 통해 시리아 내 알키바르 군사기지를 파괴했다. 당시 이 기지에는 가동 직전에 이른 흑연감속 방식 원자로가 있었는데 이 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었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북핵 폐기협정 무효를 확인시킨 지 1년 조금 지났을 무렵이다.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인 채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를 지닌 이스라엘에 핵 공격은 영토 소멸에 준하는 공포를 안길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미국 금융권과 보수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계의 성지와 같으므로 이를 대변하는 트럼프 정부가 북핵 문제에 초지일관 강경 노선을 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취임 초부터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모종의 작전 - 북핵 파괴를 위한 기습전임을 누구나 짐작할 - 을 암시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북미 회담에 쌍수를 들고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은 상당 부분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준다.

북핵은 기원이 오래 된 문제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 내력을 상세하고 실감 나게 다룰 뿐 아니라, 저자가 북한 핵 폐기를 명시한 2005년 성명문 작성 당시 미국 측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북핵 위기, 그 기원과 역사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핵을 개발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먼저 북한에는 풍부한 우라늄과 흑연이 매장되어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 개발을 위해 대량의 우라늄을 찾던 소련이 이를 알게 되면서 60년대부터 양국 간 기술 협력이 이루어졌다. 1967년 북한은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원자로를 가동시켰고 1985년 미국은 처음으로 북한에 핵무기 시설이 건설되고 있음을 공개했다. 1990년 북한은 자체 기술로 핵연료 사이클을 완성했으며, 그해 미국은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확인했다.

북핵 위기는 적어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후 국제기구의 사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이 1994년 제네바에서 합의를 이루었지만 성과를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해 아버지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은 김정일은 오히려 핵무기 개발에 전력투구하더니 2003년 NPT 탈퇴를 선언하고 무려 8000개의 연료봉으로 플루토늄을 압출하는 등 실질적인 핵폭탄 제조 능력을 보유하기에 이른다.

이후 독자적인 제재에 한계를 느낀 미국은 주변국을 설득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으니 2003년 출범한 6자회담이 그것이다. 2년 뒤인 2005년 9월 19일 마침내 6자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되는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빅터 차의 말처럼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 폐기에 북한이 서면으로 동의한 유일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빅터 차는 당시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였다.

▲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4차 6자회담에서 당사국들이 역사적인 북핵 폐기 공동성명에 합의하는 장면.

이 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성명이 휴지조각이 되는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성명 직후 미국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OA) 은행의 북한 계좌 2500만 달러를 동결시켰고 북한은 이를 맹비난했다. 이듬해 북한은 정례적으로 실시되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성명문에 위배된다고 주장했고, 그에 따른 보복 조치로 7월에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개의 탄도미사일을 발포하고 10월에 핵실험을 단행했다. 공동성명이 거둔 유일한 성과는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한 것이었는데, 그마저 2009년 4월 북한이 재차 발사한 탄도미사일 대포동 2호가 폭발력을 태평양까지 미침으로써 무색해지고 말았다.

이후 북한은 2009년 5월에 이어 2013년 2월 핵실험을 감행했고 더불어 탄도미사일 성능 개선을 병행하며 자신들이 미 본토를 겨냥하고 있음을 공공연히 암시했다. 급기야 2017년 9월 15일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기습 발사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3,700킬로미터를 날아 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 이는 미군 증원 기지인 괌을 사정권에 포함한 것으로 북핵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대화는 제재보다 강력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트럼프가 공언한 바 있는 미국식 ‘군사 옵션’ 즉 전투기와 항모를 동원한 대북 기습 공격은 실효성이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1994년 6월 미 클린턴 대통령이 ‘F-117 스텔스기와 크루즈 미사일을 이용한 영변 원자로 국부 공격’ 즉 북침에 관해 고민할 때 전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 장군이 유명한 말을 했다.

“백만, 천억, 일조.”

즉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사상자는 100만명, 전쟁 비용 1000억 달러, 산업 피해 1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이 숫자들에 0 하나가 더 붙을지 모른다.

전쟁은 어떤 경우든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평양은 핵 벙커를 비롯해 수십만이 집결할 수 있는 지하시설만 1만1000개가 넘는 도시 구조상 융단폭격으로 초토화하거나 기습 침투로 장악하기 어렵다. 일부에서 참수공격을 거론하지만 미국이 김정은의 사진 하나를 확보한 때가 2010년, 그의 나이 26세 무렵이다. 자칫 개전(開戰)이 될 경우 누가 승자가 되느냐는 관심거리가 될 수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반드시 엄청난 유혈 사태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남북 군사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 DMZ는 100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여기에 집결되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북한 기계화 부대는 한 시간에 최소 50만 발의 포탄을 서울에 날릴 수 있다. 게다가 북한 재래식 병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특수부대가 40킬로그램 군장을 한 채 24시간 이내에 50킬로미터 산간을 주파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이는 개전 초기에 북한군이 서울 면적의 1/3을 초토화시키면서 남진해 남쪽의 전략 자산을 대거 획득할 것임을 의미한다.

대 이라크 전에서 미군 탱크 부대는 사막을 횡대로 달려 바그다드에 입성했지만 서울서 160킬로미터 떨어진 평양까지 탱크가 진격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며 그 앞에 110만 보병이 버티고 있다. 이 때문에 미 국방부는 “최상의 시나리오 속에서도 몇 십만 명의 아군이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연하게도 북한 핵 미사일의 위력은 이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난 협상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국이 마련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CVID)’라는 원칙은 국제사회의 확인 속에 고농축우라늄을 포함한 북핵 시설을 절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5월로 예정된 북미 대화에서 트럼프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원칙은 물론,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의 지연책을 봉쇄할 즉각적이고도 전향적인 조치를 제안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05년 합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요구로 이에 대응하겠지만 양 당사자들이 어떤 식으로 합의해도 여전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남을 전망이다. 미국이 파악하지 못한 북한 지하 시설, 핵 및 미사일 기술과 천연 우라늄 자원, 그리고 북에 우호적인 러시아·중국과 반대로 북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이스라엘 등이 그렇다. 북핵 문제가 미국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는 이유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