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신간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소크라테스(470~399 기원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서양 철학사상 가장 유명한 소재 가운데 하나다.

▲ 김선태 편집위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배심원 다수의 판단이 틀렸음을 확신하면서도 믿기 어려울 만큼 침착하게,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사유가 정당함을 밝히려 했다. 비록 그는 독배를 마시고 71세의 삶을 마감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인류는 거대한 철학적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이 철학의 본질적 문제들에 관한 스승의 말을 빠짐없이 기록한 덕이다.

다만 스승의 억울한 죽음은 청년 플라톤을 심원한 분노의 사유에 빠트려 이후 그의 사상 전체를 규정할 두 가지 가설을 잉태시켰다. 첫째 플라톤은 그리스 민주정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 보아 민주주의를 대단히 유약하고 혼란스런 통치 체제라 주장하기에 이른다. 둘째 플라톤은 스승이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에 죽음도 의연히 맞이했다고 보고 ‘이데아론’을 근간으로 하는 형이상학 체계를 정립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서구 철학은 특별히 후자에 해당하는 플라톤의 철학에 크게 빚지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플라톤의 핵심 사상은 거의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어떤 글도 남긴 적이 없고 그의 철학적 사유 대부분을 플라톤이 기록한 탓에 두 사람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테네의 고정 관념에 정면으로 맞서다

그렇다면 인류사의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가늠할 방법은 없을까? 한 가지가 있으니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사료를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복원해 내는 일이 그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은 이와 같은 난제에 도전하여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역작이라 평가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 저. 정명진 역. 청미래 간. 336쪽.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인들은 수많은 신들을 믿었고 대소사에 앞서 신들에게 동물로 희생제를 올렸다. 그들은 노예 소유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고 자신의 용맹을 전쟁터에서 증명함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스에서 여성은 어떠한 참정권도 없는 일종의 재물이었으며 남자들은 단지 고결해지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고자 했다.

사회적으로 체계화되고 정당화된 이러한 상식과 속설에 의문을 던지고 이를 근본까지 파고 들어 상대방을 지치고 불편하게 만든 이가 소크라테스다. 성인이 된 뒤 수십 년 동안 소크라테스가 살아간 방식이 그러했다. 후일 변증술이라 불리게 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플라톤은 『라케스』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든지 소크라테스와 얼굴을 마주하거나 대화를 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일이 있다. (...) 현재 자신의 생활방식과 과거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게 되고 끝내는 완전히 갇혀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둔 뒤에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이 스스로의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진정으로 정확하게 재점검하기 전에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당대 아테네는 부패와 부정이 만연한 사회였고 시민들의 삶은 타락의 늪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중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곳에서 이런저런 상식을 신봉하며 소일하는 사람들 모두를 상대하려 했다. 유명한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희곡에서 이런 소크라테스를 비꼬아 기중기에 매달린 바구니에 담긴 채 고개를 삐죽 내민 인간으로 묘사했다.

그런 가운데 피레우스 항구에서 아이게우스 문에 이르기까지, 소크라테스는 모든 아테네 시민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지려 했고, 상대가 누구든 그가 지닌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데 추호의 주저함도 없었다. “덕이 높은 사람은 훌륭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부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부호 메논을 수치심에 젖게 만든 대화를 보자.

소크라테스 : 그대에게 훌륭한 것이란 어떤 것인가?

메논 : 금이든 관직이든 뭐든 획득하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획득’ 앞에 ‘정당한’이나 ‘정직한’을 넣어보게. 그대가 훌륭한 것들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었다 해도 그것을 미덕이라 부를 텐가?

메논 :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황금을 획득했을 경우, 오히려 그것을 가지지 않는 게 미덕일 수 있지 않은가? (『메논』)

오늘날 이런 논증은 평범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논증으로 소크라테스가 당대인에게 던진 메시지는 간단치 않았다. 삶이란 상식적인 관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닌 것이며, 당연한 것으로 선언된 것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는 말이었으니.

목숨을 던져 이성의 힘을 증명한 철인

소크라테스는 어떤 상식에서도 예외를 찾아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상대방의 직관을 허물어뜨렸다.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이성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 신념을 순수 의견(true opinion)이라 불렀으며 이를 오늘날 지식(knowledge)이라 부르는 사유의 힘으로 전복시켰다. 그렇게 해야만 아테네인들이 어떤 폭풍우를 만나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지탱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아테네인들은 될 수 있는 한 소크라테스를 멀리 하려 했다. 그럼에도 도저히 아고라에서 그를 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자 아테네인들은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청년을 무고하고 신을 모독한 죄로 그를 재판에 넘긴 것이다.

기원전 399년 어느 날 500명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민주적인 재판이 열렸고 한 차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있은 뒤 배심원 다수인 280명이 유죄를 주장했다. 이어 만면에 웃음을 띤 소크라테스가 변론을 재개했는데 이때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단 몇 분에 지나지 않았고, 게다가 재판정을 일터처럼 드나드는 상이군인과 노인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에게 그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두 번째 평결에서 더 많은 360명의 배심원이 유죄를 주장했고 판사는 사형 판결을 내렸다.

▲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 뉴욕 메트로폴리턴 미술관 소장본.

이렇게 해서 오늘날 그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연상될 장면이 이어질 터였다. 이 그림에서 소크라테스는 실제 그러했듯이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고 그것이 못마땅한 플라톤은 스승을 등진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데, 슬픔에 몸을 가누기 힘든 스물아홉 청년이라면 누구나 그러했을 터이다(다만 작가는 한없는 경외심 때문에 플라톤을 노인으로 그렸다). 5월 7일 소크라테스가 숨을 거두자 그의 절친한 벗 크리톤이 친구의 눈을 감기며 말했다.

우리의 친구,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용감했고, 현명했고, 고결했던 존재는 종말을 고했다. (『파이돈』)

알랭 드 보통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되도록 그의 삶을 긴 호흡으로 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천재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난에 맞서 고집을 피우려는 것은 고지식하고 때로 어리석은 짓일 뿐 중요한 것은 논리의 법칙을 지키는 것이다. “늘 이성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소크라테스의 예를 따르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보통은 말한다.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오늘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아도 편리하게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상식의 힘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의 힘인가? 따뜻하나 몽롱한 어둠의 속삭임인가, 섬뜩하나 눈부신 새벽의 꾸지람인가? 여론인가 이성인가?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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