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제가 갖고 있었던 인생의 꿈을, 인생의 목표를, 경영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인정받아 창업자이신 이병철, 이건희 회장님같이 성공한 기업인으로 이름 남기고 싶었습니다.

▲ 최성범 주필

저는 재산 욕심, 지분 욕심, 자리 욕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제 꿈은 삼성을 이어받아서 열심히 경영해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제가 받아왔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재벌 3세로는 태어났지만 선대에서 이뤄놓은 우리 회사를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더 단단하게 더 강하게 더 가치 있게 만들어서 저 자신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꿈이었고 기업인으로서의 목표였습니다.”

“저는 경영혁신 신사업발굴로 좋은 일자리 만들어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회사 임직원들로부터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병철의 손자나 이건희의 아들로서의 이재용이 아니라 선대 못지않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기업인 이재용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12월 27일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최후진술한 내용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법정에서 진술한 대로 삼성전자는 돋보이는 재무적 성과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4분기에 매출 65조9800억원, 영업이익 15조15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사상 최대 실적이다. 이에 따라 2017년 연간 기준으로는 매출 239조5800억원, 영업이익 53조65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반도체 사업에서만 영업이익이 10조원 이상 발생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재무적 성과만으론 이재용 부회장은 훌륭한 기업인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반도체 경기 호조에 따른 기록이라고 해도 탁월한 성과를 냈다는 점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과연 재무적 성과만으로 삼성그룹이 초일류 기업이 되고, 이재용 부회장이 훌륭한 기업인이 될 수 있을까?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재무적 성과가 필요조건인 것은 분명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재무적 성과를 뛰어 넘어야만 삼성그룹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지닌 진정한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고, 이재용 부회장도 훌륭한 기업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삼성그룹의 경영을 보면 철저한 실적주의에 입각한 행보를 보여 왔다. 삼성테크윈 매각(2015년 6월), 화학부문 매각(2016년 2월), 프린팅 솔루션 사업 매각(2016년 9월)의 경우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물론 글로벌한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 부문은 축소하거나 매각한다는 원칙 하에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재무적 성과만으로 초일류 기업이 되기엔 2% 부족하다. 지속가능한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재무적 성과를 뛰어 넘는 뭔가가 있어야만 한다. 전문 경영인에게 이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너 경영인인 이재용 부회장의 몫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행보는 사업구조 개편의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 삼성생명 빌딩, 태평로 빌딩, 삼성화재 빌딩 매각, 제일기획 매각 시도 등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고 상징이기도 했던 건물이다. 만년 우승 후보이던 삼성라이온스가 투자를 하지 못해 꼴찌팀으로 전락한 현실을 용인하고 있는 대목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이 재무적 성과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도 알고 보면 재무적 잣대만을 의사결정의 기준으로 삼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누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과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의 전환사채(CB) 및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3자 발행 등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의 와중에서 오히려 화가 되었다.

과거의 편법이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탓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에 청탁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 부회장의 말이 1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라고 봐야 한다. 검찰이 국민감정만을 믿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재무적 성과와 숫자에만 집착하다가 국민들의 마음을 잃었다는 점에 대해선 이재용 부회장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가 큰 부분을 놓친 것 같습니다. 저희 성취가 커질수록 국민들과 사회가 삼성에 건 기대가 더 엄격하고 커졌습니다.”(2017년 8월 7일 1심 최후진술).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 못 보여드린 점 다시 한 번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년 동안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2월 5일 집행 유예 선고후 석방의 변)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곧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이다. 아마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 지난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막한 ‘삼성 포럼’ '삼성 포럼' 전시 부스에서 유럽의 주요 거래선 관계자들이 대형 QLED 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그러나 ‘세심하게 살피고 열심히 하기’보다는 좀 더 큰 틀을 보길 바란다. 존경 받는 기업인들은 단순히 그룹의 매출이나 자산 등 규모, 이익 등에서 벗어나 도전정신, 혁신, 기업가정신 등의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경쟁력, 초일류 기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어내고, 매출액과 이익에서만 초일류가 아니라 존경받는(admired) 기업으로 도약하는 게 국민들의 바램일 것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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