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경북의 영덕 울진 지역이 이제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아닐 수도 있겠다. 70년대 대학 시절만해도 이 지역에 가려면 저녁에 청량리발 3등 완행열차를 타야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밤새 태백산맥을 넘어 새벽녘에 정동진이나 강릉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삼척, 임원 등을 거쳐 울진의 성류굴, 영덕의 강구 항에 도착하는 게 최단 코스였다.

80년대에는 그래도 도로사정이 좋아져 김천에서 상주, 예천, 안동, 임하댐을 지나 태백산맥 줄기인 일월산 넘어 울진의 백암온천에 가본 적이 있다.

태백산맥의 서쪽 지역인 봉화 안동 영양 청송 등도 가기 어려운데 영덕, 울진 지역은 ‘대게’, ‘홍게’ 산지로만 알려졌지 직접 가보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TV ‘백년사위’ 프로그램에 울진 후포리가 나와 국민들에게 무척 친근해졌다. 아직도 차로 간다면 서울서 중부, 영동, 중앙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상주-영덕 고속도로를 갈아타야 갈 수 있다.

초봄 영덕 강구항의 ‘대게축제’가 유명하지만 같은 시기 울진서도 대게축제를 연다. 울진 사람들은 ‘울진대게’가 아직도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진상품이었다고 ‘원조’ 논쟁을 벌인다.

박정희 김종필씨 등이 62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후 63년 행정개편으로 강원도 울진군을 경북으로, 전북 금산군을 충남으로 바꾸었다.

항간에서는 정권의 두 주역이 고향에 대한 배려로 군을 떼어 갔다고 수근 거렸다. 울진이 강원도였기 때문에 대게 원조 논쟁은 강원과 경북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바로 북으로 이어진 삼척까지 ‘척하면 삼척대게’라고 비슷한 시기인 2월말에 축제를 열고 있다. 같은 먼 동해 바다 깊은 곳에서 잡아 어느 항구로 들어오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 ‘원조’논쟁이 재미있다.

이 동해안 철도부설 계획은 일제 때 입안됐으나 중일, 태평양전쟁으로 무산돼 이 지역은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2일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경강선(서울-강릉) KTX가 개통돼 1시간 반이면 강릉에 닿아 동해안 여행에 숨통을 텄다. 여기서 위로는 속초까지 이어져야 되고 남쪽으로는 삼척을 거쳐 강원도를 넘어 울진 영덕 포항까지 이어질 수 있다. 기존의 동해남부선까지 있어 울산, 부산까지의 남한의 동해안 철도망이 갖추어 진다.

▲ 강릉역을 달리는 서울~강릉 KTX=코레일 제공

이 역사적인 동해안 철도망의 시작인 ‘포항~영덕 철도’ 개통식이 지난 1월 25일 영덕역에서 있었다. 2020년 개통 예정인 포항~삼척간 철도건설사업 1단계 구간이다. 포항에서 삼척까지는 총연장이 166.3㎞다.

1단계 포항~영덕 철도는 2009년 4월 착공해 포항시 북구 흥해읍 포항역에서 월포역, 영덕군 장사역, 강구역, 영덕역까지 총연장 44.1km이다. 이 철도는 지난달 26일 포항발 오전 7시58분 무궁화호(영덕발 첫 차 : 오전 8시52분) 첫 운행을 시작으로 하루 14회 왕복 운행한다.

이 ‘동해선’ 구간은 일제가 1927년 현재 북한의 함경도에서 포항까지 해안 철도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 부지까지 닦은 후 80여년 만에 첫 시작이 된 것이다.

앞으로 서울에서 영덕까지 기차여행을 한다면 일단 KTX로 동대구 경유 포항역을 가서 무궁화열차로 갈아타도 3시간 10분 정도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철도를 타고 포항∼삼척을 거쳐 강릉 속초를 넘어 남과 북을 연결하는 한반도 종단 열차(TKR),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만주횡단철도(TMR)와 이어져야 한다. 일본에서 부산으로 오는 물동량이 환동해는 물론 대륙으로 운반되는 세계 물류 중심축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포항~영덕 철도 개통으로 포항에서 영덕까지 대중교통(우등버스) 이동시 1시간 소요되던 거리가 34분으로 줄고 포항, 영덕, 울진, 삼척으로 이어지는 관광객 증가와 더불어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경주-포항 지역 지진으로 피해를 보았지만 포항은 포항제철뿐 만 아니라 을릉도행 여객선 출발지다. 포항에선 역시 동해안 수산물의 집산지인 죽도시장이 매력적이다. 죽도시장은 전국 5대 시장이자 경북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활어횟집, 건어물, 의류, 채소를 파는 난전까지 없는 게 없다.

포항을 출발해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월포역에 닿는다. 포항 시내에 영일만 위쪽으로 칠포 해변, 월포 해변, 화진 해변이 연결되어 있다. 제일 북쪽의 월포해수욕장은 1.2km에 이르는 백사장을 둘러싼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 지난해 4월 3일 경북 영덕 강구항 일대에서 열린 영덕대게축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대게를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영덕군 제공

포항 주변의 관광지로는 겸재 정선이 금강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경관이라 칭송한 내연산이 있다. 입구 보경사에서 시작되는 깊은 계곡이 유명하다. 내연산 12폭포라 불리는 이 곳은 연산폭포들이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영덕군 들어와 첫 역인 장사항은 ‘아름다운 어촌마을’로 선정될 만큼 방파제 안에 어선이 늘어선 광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주위 횟집서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고 바다낚시를 즐기기에도 좋다.

어촌 체험마을에서는 수학여행 학생들에게 오징어 먹물 글씨쓰기(오적어 묵계) 등을 하게 해주어 ‘오징어 마을’ 로 유명해졌다. 2000년 여름부터 개최한 ‘장사항 오징어 맨손잡기 축제’ 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강구항은 영덕군에서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힌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대게, 오징어, 청어, 방어 등이 가득하다. 바다 쪽으로 물이 빠지는 하천 오십천에서는 은어 낚시꾼들이 복작댄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겨울이면 역시 영덕 대게다. 다리 모양이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으며 길쭉하고 곧다고 하여 대게라 불렀다. 대게는 물이 차가워질수록 살이 단단해져 12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이다. 아침 일찍 강구항에서 대게 경매 장면을 볼 수 있다.

▲ 울진군 거일2리 바닷가에 세워진 울진대게 형상과 유래비/코레일관광개발 제공

이 철도도 남북을 잇는다. 우리나라 대부분 철도가 일제 강점기 물류를 위주로 남북으로 만들어져 동서간 교류가 어렵다. 해방 후 영주-강릉간의 영동선과 1968년의 삼랑진- 광주 송정리 간의 경전선이 동서교류 철도의 첫 걸음이었다. 이번에 경강선이 3번째 동서선이어서 앞으로 더 많은 동서 철도와 도로가 뚫려 동서화합의 동맥이 되길 기대해본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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