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5조원 아래로 뚝 떨어졌다. 현대차 연간 영업이익이 5조원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2010년 회계기준 변경 이후 처음이다.

▲ 최성범 주필

현대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4조5747억원으로 전년보다 11.9% 줄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률 역시 4.7%로 전년보다 0.8%포인트 하락했다. 매출액은 2.9% 증가한 96조3761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 50조원과 비교되는 실적이다.

원인은 당연히 판매부진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연간 글로벌 시장에서 전년 동기대비 6.4% 감소한 450만6527대를 판매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판매량이 급감한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같은 기간 1.6% 증가한 370만여대를 판매했다. 실제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3월 사드 배치로 현지에서 반한(反韓)감정이 확산된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주력모델의 노후화 등으로 판매량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시장에서 판매대수가 급감하면서 당기순이익도 전년보다 20.5% 줄어든 4조5464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일부 차종의 생산 차질에도 연중 지속된 그랜저 판매 호조와 코나, G70의 신차 효과 등에 힘입어 전년 동기대비 4.6% 증가한 68만8939대를 판매했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는 중국 시장 판매 하락 등의 영향으로 8.2% 감소한 381만7588대의 판매 실적을 보였다. 또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수출의 가격경쟁력 및 수익성도 악화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주요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영업부문 비용이 증가했으며, 중국 등 일부 시장에서의 판매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난해 수익성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고 말했다.

현대차 실적 부진의 근본 원인은 뭘까. 과연 회사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단순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 이대로 간다면 심각한 경영위기가 올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브랜드 관리에 실패해 미국과 중국의 거대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면서 브랜드의 위상이 애매모호해졌다. 완성차 시장의 세계적 트렌드에는 항상 뒤쳐진다. 지난해 실적 부진은 이미 예견됐던 문제점이 현실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셈이다.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문 조사업체인 포린은 ‘현대 자동차 그룹의 2025년 전략’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가 최대 해외 사업 기반인 중국에서 선진 메이커와 중국 로컬 메이커 양쪽에 밀리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이면서, 지금까지 구축한 판매 기반이 잠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린 보고서는 현대차 그룹 위기의 원인을 ▲연구 개발 능력 부족 ▲경영권 승계 ▲환경 규제 ▲중국사업 부진 ▲내수시장 부진 등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현대차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는데도 노사 모두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 전략 부재인 만큼 전략 개편과 리더십 확립이 절실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의 와중에서 현대차 경영진의 리더십이 애매해진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친인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전면에 나설 정도는 아니다.

▲ 현대자동차그룹이 판매부진으로 인한 실적 급락과 제몫 찾기에 급급한 강경 노조 등 대내외 난제에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경기 용인 처인구 현대자동차그룹 환경기술연구소에서 수소전기차 넥쏘 시승을 마친 뒤 걸어오고 있는 모습./뉴시스 자료사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오너 경영인이 전면에 나서야 하지만 경영권 승계 작업에 아직 본격 착수하지도 못했다고 보는 게 맞다.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이 지난해 연말까지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해 밑그림과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했지만 발빠르게 대처한 롯데, 효성, 태광 등의 경우와는 달리 현대차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현대차 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의 지분의 20.8%를, 현대차는 기아차지분 33.9%,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이자 그룹 경영을 사실상 진두지휘해온 정의선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 부회장은 글로비스 23.3%, 현대차 2.3%, 기아차 1.7%를 갖고 있어 지분율도 낮을 뿐만 아니라 순환출자의 핵심인 현대 모비스 주식이 한 주도 없다. 그렇다고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구속돼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풀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부장적 경영 체제인 탓에 전문경영진 풀도 약한 편이다.

오너 경영진들이 경영권 승계라는 걸림돌에 걸려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현대차 노조는 제 몫 찾기에만 급급한 태도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노조는 경영 위기를 회사 탓으로만 돌리려는 인식에서 한 치의 변함이 없다.

현대차 노조는 챙길 수 있을 때 챙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과도한 임금인상울 요구하고 파업을 연례 행사처럼 치르고 있다.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기도 한다. 2012년부터 울산공장을 이끌었던 윤갑한 전 사장은 얼마전 퇴임식에서 “자만과 착각에 빠져 있는 노조도 현실을 직시하고 소중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위기극복을 위한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과거 GM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때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던 GM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정부의 구제 금융을 받기도 했다.

국민 기업인 현대자동차가 노사 양측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걷어치우고 다시 내달리기를 기대해 본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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