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을 보면서…‘촛불 떠나 냉정하게 쟁점 짚어봐야’

최아람 기자l승인2018.01.31l수정2018.01.3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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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최아람 기자]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입구에는 ‘방청권 추첨’에 참여한 시민들이 길게 늘어섰다. 다음달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직접 보기 위한 행렬이다.

재판 때마다 선착순 마감할 때는 새벽 3시 30분에 방청권이 바닥난 적이 있는 등 ‘과열’을 띠기도 했다.

기자는 항소심 선고를 닷새 앞둔 이날 검찰의 공소 내용과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최후진술, 변호인 측의 최후변론 등을 다시 살펴보았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공여'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자신감을 보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공소장을 4번이나 변경하면서까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지원을 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지난해 12월 27일 이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직접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로 국민 주권의 원칙과 경제 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며 1심 때와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선뜻 납득할 수 없다. 법도 상식에 기초해야 하는데 특검팀의 논리는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특검팀에 공소장 변경을 주문했고, 특검은 이에 따라 '단순뇌물공여죄'만 적시했던 공소장에 예비적 청구로 '제3자 뇌물공여죄'를 추가했다. '단순뇌물공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제3자 뇌물공여죄'라도 적용해달라는 취지다.

제3자 뇌물의 핵심은 '부정한 청탁'의 여부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는지가 관건이다.

특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0차 독대' 카드를 내밀었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 안가에서 박 전 대통령과 2015년 7월과 2016년 2월 두 번 만났다.

그런데 삼성이 두 회사의 합병을 결정한 때는 2015년 5월이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독대 시기가 합병이 이미 완료된 다음이라서 뇌물 공여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검은 2014년 9월 12일 청와대에서 한 차례 더 독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에 대해 "제가 기억 못하면 적절치 못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제가 치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만약 이 부회장이 거짓말을 했다면 금세 탄로날 게 뻔하고,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기자는 상식적으로 이 부회장의 말이 옳다고 믿는다.

청탁의 필요성도 의문이다. 이 부회장 측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은 삼성을 표적으로 한 최순실씨의 강요·공갈의 결과이지 뇌물이 결코 아니다"고 항변했다. “대통령에게 뇌물을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한 적이 없으며, 대통령이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433억원에 대해서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는 게 이 부회장의 변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중형(1심 5년 선고)의 이유가 된 뇌물 공여와 관련해선 최후진술에 담겨 있는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청탁의 시기가 잘 맞지 않으며, 대통령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청탁의 필요성이 있었는지도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이젠 촛불혁명이 시작된 지도 1년이 지난 만큼 국정농단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쟁점을 짚어 볼 시점이다.

기자는 재판을 지켜보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을 엮어야만 촛불혁명이 완성되고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이 지켜지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거꾸로 이 부회장이 석방되면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이 훼손되는가라는 의문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아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사유는 ‘차고 넘치고’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무죄든 집행유예든 중형이든 재판부가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근거해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면 누구든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시중에는 재판부가 이른바 ‘촛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등의 해설이 난무한 지 오래다.

삼성전자는 이날 지난해 53조6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분위기는 여전히 착 가라앉아 있다. 이 부회장이 ‘억울하게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도 여전한 것 같다.

죄를 지었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고 해코지만 하지 말아달라’는 차원의 ‘보험’이라고 생각했든, ‘최순실의 강요에 의해 사회공헌하는 심정’으로 돈을 냈든 그 결과가 중형이라면 공정하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도 올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다. 하늘의 뜻이야 공자같은 경지에 달한 성인(聖人)이 논하는 것이겠지만, 이 부회장도 ‘사명’ 정도는 알 수 있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 총수가 ‘지은 죄도 없이’ 감옥에서 ‘반성’해야 하는 상황은 이쯤해서 멈춰지기를 바란다.

 
최아람 기자  e5@econ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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