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적 공세 벗어나 상호 존중하는 ‘언어의 리더십’회복 시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한국 정치의 언어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품격을 잃어가고 있다. 올해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선거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점에서 예고된 여야간 공방이지만, 상대를 향한 저주의 언어나 수준 낮은 악담과 막말은 시민들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

대표적인 사례가 민족의 염원과 지구촌 평화의 이상을 담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공격하며 색깔론을 펴는 야당의 황당한 모습이다.

세계의 스포츠인들이 모이는 평화의 제전인 평창올림픽을 북한 체제를 오버랩시킨 ‘평양올림픽’이라는 색깔론으로 비하하는 모습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평창 올림픽이 아니라 평양 올림픽"이라는 주장은 "(남에 대한) 존중감이 없는 말로,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열심히 준비해온 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다”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을 것인가.

외교적인 수사를 구사해 온 IOC 위원장으로서는 수위가 높은 발언을 통해 정략적 주장으로 올림픽의 이상을 폄훼하는 이들에게 강도 높은 경고를 날린 셈이다.

동양의 성현으로 불리는 철학자인 공자(孔子)는 논어에서 “군자는 자기가 말한 것이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행하지 않는 말을 삼가고 말 이상으로 실천하도록 힘쓴다”라고 말했고,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公)은 “한번 잘못한 실언(失言)은 사두마차(四頭馬車)로도 따라갈 수가 없다. 말을 할 때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의 힘을 경계했다. 상대를 공격하는 거친 말은 반드시 나에게 더욱 거칠고 아프게 돌아오는 법이다.

◇ 상대를 저주하는 비이성적인 ‘정략적 언어’ 퇴출해야

이같은 사례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여성 최고위원과 막말퍼레이드를 벌인데 이어 문재인 정부에 대해 '문슬람 댓글', '괴벨스식 나라운영'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막말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8일 현재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남 밀양화재 사고에 대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며 “북한 현송월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쇼통'과 정치보복에 혈안이 돼서 가장 소중한 국민의 삶, 그리고 의료복지 등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유족 위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할 화재사고에 색깔론과 정치보복론을 덧씌우기도 했다.

▲ 남북선수단이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토리노=AP/뉴시스 자료사진】

이처럼 거친 공세와 비난정치로는 추락한 국민지지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능력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원숙하고 기품있는 정치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협치의 상대에 대해 공격적인 언어로 비난공세를 펼치기는 마찬가지다. 책임있는 집권여당이라는 점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능력을 과시할 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집권 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인기에 기대다가는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민심의 이반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혁신과 헌신으로 민생 안정 및 제도관행의 개혁과 외교능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분당 위기에 놓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통합반대파의 상대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과 민주주의 파괴 행태도 국민을 실망하게 하고 있다.

안 대표는 28일 당무회의 입장문을 통해 "통합반대파의 노골적 해당행위가 급기야 신당의 창당발기인대회를 여는 정치패륜 행위에 이르렀다"며 "통합 찬반을 묻는 적법한 전당원 투표에 대한 방해공작을 시작한 이후 온갖 해당행위를 해오다가 마침내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당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고 반대파를 무더기 중징계하며 원색비난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걸 모른다더니 안철수 대표 구태정치 참 빨리도 배웁니다"라고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할 정도로 거친 정치권의 언어 사용이다.

◇ ‘흑묘백묘론-4가지 자유’ 언어마술사 덩샤오핑-루스벨트

문제는 다시 ‘말’이다. 지도자의 언어는 대중을 이끄는 힘과 메시지, 상징성을 가져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리더십과 업무의 성과를 말로 표현해야 한다. 말하기는 경쟁력이고, 그래서 현대사회는 스피치의 시대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불린다.

▲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왼쪽)가 지난 1978년 11월12일 싱가포르를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중국 부총리를 환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신화/뉴시스 자료사진】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덩샤오핑(鄧小平)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를 ‘흑묘백묘론’이라는 화두로 설파해 중국대륙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

작은 키에 문화대혁명 당시 실각하며 위기를 맞았던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G2로 부상하는 중국의 기세를 이끌어냈다.

1940년 11월 세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 6일 의회에 보내는 연두 교서에서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언급하며, 민주 국가를 하나로 뭉쳐 이 4개의 자유를 구현하는 세계를 재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꼭 방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국가들에게 무기 대여 협정에 따라 원조해 줄 것을 의회에 호소했고, 미 의회는 두달 후 교서에 나타난 정신과 정책에 입각하여 70억 달러의 지출을 승인하는 무기 대여법(Lend- Lease Act)을 통과시켰다.

이 '4가지 자유'는 41년의 대서양헌장, 42년의 연합국공동선언을 거쳐, 국제연합(UN)헌장의 인권조항이 되었고, 1948년 12월 10일 UN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의 전문에 삽입됐다. 말의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군사독재 정권에게 투옥당하고 사형선고를 받는 등 고통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옥중서신>을 통해 “이해하면 용서하게 되고, 용서하면 화해하게 되며, 화해하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 마음, 그것이 사랑과 화합으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용서하게 되면 인생의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깁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집니다”라고 용서와 화해의 정치리더십을 역설하곤 했다.

27년간의 투옥생활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혹독한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4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며, 흑인들을 탄압했던 백인들에게 용서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난 말을 결코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를 통해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며 늘 신중하고 정확한 언어의 사용을 강조하곤 했다.

◇ 악담의 과거정치 벗어나 상생의 ‘언어 리더십’찾으라

대중은 늘 리더가 무슨 말을 할지, 자신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줄지에 대해 귀를 쫑긋 기울인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논리정연하고 당당하게 어떤 점이 사실이며 진실에 가까운지, 학문적 이론틀에 근거해 현장상황을 재구성하고 분석한 뒤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상대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로 말해야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논리 전개 역시 명확한 사실과 근거에 의거해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상대를 공격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예의바르고 정중한 태도로 말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 자신이 발언을 독차지하려는 권위적인 태도는 대중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는 21세기 들어 많은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밀양화재사고에서 드러나듯 시민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사회에서 기성사회를 불신하고 회의하고 있다. 갑들의 횡포 속에 을이 된 시민들은 사회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사회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삶은 비정규직과 실업난 속에 절망 속에 고통받고 있고, 중장년층은 조기퇴직과 불안한 미래, 갈수록 취약해지는 삶의 수준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오후 경남 밀양시 삼문동 밀양문화체육회관에 마련된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정치권은 이같은 현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국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상대와 경쟁과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증자(曾子)는 “말을 입 밖에 내는 데에는 비루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야비하고 비도(非道)한 자는 스스로 멀리 갈 것이다”라고 말했고, 공자는 논어에서 “말이라는 것은 의사가 정확하게 상대에게 전달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쓸데없이 수식하거나 중언부언하고 길게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설파했다.

한국 정치는 과거형 권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시민의 가치와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언어도 과거의 대립과 투쟁에서 벗어나 협력과 타협을 모색하며 시민의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치권이 서로를 죽일 듯 저주하는 악담의 정치에서 벗어나 상생과 발전을 이끄는 ‘언어의 리더십’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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