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현송월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의 예술단장이 일행 7명과 함께 일요일인 21일 아침 리무진버스를 타고 판문점 육로를 거쳐 남한으로 왔다.

개성공단 폐쇄이후 3년 만에 통일대로가 북적였다. 오랜만이다. 원래 하루 전에 올 예정이었는데 전날 밤에 갑자기 못 오겠다고 통지해와 남한 당국이 그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는데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꾸고 내려온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1991년 일본 삿포로(札幌)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이후 3번째인 평창 동계올림픽 단일팀을 위한 첫 발걸음이다.

전날 스위스 로잔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북한 선수 12명을 수용하고 3명이 출전하게 해주었다. 이로써 국제대회에서 이미 엔트리를 딴 피겨 페어 2명을 비롯한 총 22명의 북한선수와 18명의 임원진 등 40명의 공식 참가단이 확정됐다.

북한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진 마당인 만큼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을 게다. 더욱이 핵미사일 발사 실험이후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인 압박이 강하게 몰려오고 있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숨을 돌리려는 겨를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응원단이 참가할 것이냐는 화두는 오래됐다. 그간 외국에서 열린 스포츠 대회에 남북한 동시입장이나 단일팀이 성사된 적이 더러 있지만 우리 땅에서 치러지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 좋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바람이었다.

그러나 지난 2~3년간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합의를 어기고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국제적인 비난과 압박을 받아왔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에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수위까지 긴장이 올라간 상태여서 타개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평창단일팀을 언급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이에 화답함으로써 단초를 열었다.

이어 올해 들어 급진전돼 남북한 양측은 고위급 회담 등 10차례에 걸친 회동 끝에 지난 17일 여자아이스하키 종목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고 올림픽 개막식에는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입장하기로 하는 등의 합의 내용을 담은 공동보도문을 내놨다. 이를 IOC가 추인해 주었고 남북 간에 합의한 대규모 응원단과 공연단도 내려오게 됐다.

개막식 ‘한반도기’ 입장과 남북 단일팀 구성 외에 북한 응원단 230여명과 별개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조총련) 응원단 및 30여명 규모의 북측 태권도 시범단 방한도 허용키로 했다.

원산의 마식령 스키장도 국가대표가 아닌 남북 스키선수의 공동훈련장으로 활용키로 전격 합의했다.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140명의 대규모 공연단도 강릉아트센터와 서울에서 2차례 공연을 갖고 금강산에선 남북 합동 문화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연히 시중에선 화제다. 우리가 삼수 끝에 따낸 평창 동계올림픽을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제재 효과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이때 굳이 북한의 국제적 활로모색의 장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 남북선수단이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토리노=AP/뉴시스 자료사진】

또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긴장완화 차원에서 북한 선수단의 참가는 인정할 수 있더라도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은 주최국으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라는 비판도 많다. 또한 그간 피땀 흘려온 우리 여자 하키팀에 북한 선수들이 그냥 들어오는 것은 올림픽의 ‘페어플레이’정신을 위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를 받아 지난 15~17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때 남북 선수단이 모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40.5%에 그친 반면 ‘남한 선수단은 태극기를, 북한 선수단은 인공기를 각각 들고 입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답변은 49.4%로 약간 더 높았다. 보수층 뿐 아니라 중도층 역시 과반인 54.8%가 ‘태극기·인공기를 각각 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에 대해 국민들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치열하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8일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 "문재인 정부는 평창올림픽이 아닌 평양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당이 유치한 올림픽에 숟가락만 들고 남북 정치쇼만 하고 있다고 평가절하 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도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에 올림픽을 갖다 바치며 평화를 구걸할 이유는 없다”고 정부 태도를 질타했다. 같은 당 이철규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렸던 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특위에서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에게 “북한은 인공기, 우린 태극기를 들면 된다”고 촉구했다.

바른정당 권성주 대변인도 “삼수 끝에 유치한 올림픽 초점이 온통 북한에 맞춰져 있다”며 북한을 위해 유치한 올림픽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을 추진하면서도 안철수 대표는 인공기 입장에 반대이고 유승민 대표는 한반도기 동시입장에 반대다.

▲ 북한 예술단 사전 점검차 방남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21일 오전 서울역에 도착, 강릉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플랫폼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반면 박지원 전 대표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한반도기로 입장하더라도 메달 수여식에는 남북 국기가 각자 게양되고 각자의 국가가 연주된다”며 “소아병적인 트집으로 평화올림픽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광림 한국당 의원은 “단일팀 구성은 우리나라 선수들에 대한 배려 없는 또다른 정치쇼”라며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올림픽 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매진했다.

이들의 노력은 외면한 채 정부의 일방적인 남북 단일팀 구성 발표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흘릴 눈물은 누가 닦아 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모든 논의들이 일리가 있다. 특히 젊은 층도 반대의견이 많아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65%대로 4~5% 떨어졌다.

그러나 18일 남은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이 오고가고 평창올림픽이 평화롭게 치러지면 남북관계 개선을 넘어 북미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올림픽은 인류평화를 위한 제전이고 어떤 교류보다 큰 신뢰구축의 장이 된다. 지금 우리 내부의 어떤 논란도 한반도의 평화구축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가야만 한다. 그만치 김정은의 핵 도발과 트럼프의 압박이 한반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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