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올해는 북핵 제재 덕택에 동해안 신선 오징어회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까? 겨울 제철인 요즘 동해안 횟집에서 오징어 한 마리가 1만5000원을 웃돌아 오징어보다 흔한 광어나 가자미회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 남영진 논설고문

오징어회는 해삼, 멍게, 개불, 가자미세코시와 함께 서비스 안주로 맛만 보았다. 지난해 말 강원도 양양 물치항 에서의 일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올초 ‘2018 해양수산 전망과 과제’라는 자료에서 주 원인을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어업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자료에는 지난해 우리나라 오징어 생산량이 최근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연·근해 및 원양산을 포함한 국내 전체 오징어 생산량이 전년도 14만9267t에 비해 20% 가량 감소한 12만82t으로 나와 있다.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체 생산량 중 국내 오징어 어획량은 8만t에 불과해 전년도 12만t보다 약 33%나 급감한 것이다. 오징어 채낚기어선 등은 3~4년 전 만해도 한번 조업에 1만 마리 정도 잡았는데 지금은 1000마리 잡기도 힘들어 선원 월급과 어선 기름값 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회유성 어종인 오징어는 북한 수역에 살다가 6∼11월께 동해안으로 남하한다. 울릉도 오징어와 겨울 동해안의 오징어회가 유명한 이유다.

그러나 2014년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조업권’을 사서 북한 수역에 입어해 남하하는 오징어를 마구 잡아 요즘 동해안에서도 보기 어렵다.

지난해 북한 동해안의 중국 어선은 1709척으로 전년도 1268척보다 약 35%나 급증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해 말 대북 제재 결의안에 ‘조업권 거래금지’를 명문화해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조업이 제한될 수 있어 어획량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KMI는 예측했다.

‘울릉도 오징어’의 주산지인 경상북도도 사정이 어렵다. 지난해 도 전체 오징어 어획량은 1만9442t, 오징어 집산지인 포항 구룡포는 6278t으로 전년도 2만9305t과 9442t에 비해 각각 33%씩 줄어들었다.

동해 어민들은 명태에 이어 오징어까지 이어진 어족 자원 고갈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민들은 “조업권이 없는 무허가 중국 어선까지 북한에 몰려들고 있다”며 “일본과의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 해결, 어민 저리 자금 지원 등 생계를 위한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 경북 울릉도 앞바다에 오징어 떼가 몰리자 오징어 잡이 어선들이 오징어 유인등으로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은 줄었고 오히려 위판금액은 늘었다. 울릉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오징어의 위판급수는 16만9544급(1급은 20마리)으로 86억4900만원의 위판금액을 올렸다. 전년 대비 위판급수는 3만급이 줄어든 반면 위판 금액은 23억원 늘었다.

어획량이 줄고 생물오징어 가격이 급상승하자 지난해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외지 어선 40~50여 척이 울릉도 연근해에서 잡은 오징어를 울릉수협에 위탁판매 했기 때문이다. 그 위판금액 20여억 원은 인근 동해안 어민의 수입이어서 울릉어민의 수입은 줄었다.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가격이 급등해 지난해 오징어 산지 가격은 1㎏당 평균 5282원으로 전년 대비 62%나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오징어의 소비자 가격 역시 1㎏당 1만26원으로, 전년 대비 50% 가까이 올랐다.

특히 하반기에는 물량이 부족해 최근 5년간 가장 비싼 1㎏당 1만1000원대까지 치솟아 그야말로 ‘금(金)징어’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5일 울릉선적 광명호(선주 김해수)가 잡은 오징어는 한 급(20마리)이 10만1000원에 낙찰됨에 따라 울릉수협 위판 이래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금오징어’란 별명을 얻었다. 설화에 따르면 오징어는 마치 죽은 시체처럼 수면에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까마귀가 쪼아 먹으러 내려오면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고 한다.

오징어의 어원이 오적어(烏賊魚)라고 하는 이야기다. 오징어의 먹물과 까마귀의 검은색을 서로 연관시켜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연체동물의 두족류라면 작은 것부터 꼴뚜기, 쭈꾸미, 한치, 낙지, 오징어, 문어까지 즐겨먹는다. 쫄깃한 씹는 맛을 좋아한다. 그러나 중동 지방에서는 비늘이 없다고 안 먹는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나 크로아티아 등 지중해에 가까운 남유럽에서는 먹지만 영국, 동유럽, 북유럽에서는 잘 안 먹는다.

최근 들어 북유럽권도 중국계 식당과 인구 유입의 영향으로 오징어를 차츰 먹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나 동양계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다.

미국 일반 마트에서는 구하기 힘들고 생선 코너에서 손질된 갑오징어를 판매하는데 다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오징어(스퀴드)랑 갑오징어(칼라마리)를 따로 판다. 미국인, 동유럽, 영국인은 오징어에서 나는 비린 냄새를 굉장히 싫어해 슈퍼마켓에서 오징어를 직접 잘라 파는 경우는 드물다. 호주에서는 이민자들 덕분에 튀긴 오징어링이 피쉬&칩스의 주 메뉴로 자리 잡았다. 독일 남부 대학교 학교식당에서도 가끔 오징어링 튀김이 나온다. 그리스 사람들은 고대부터 오징어를 좋아했다. 앞바다인 에게해에 오징어가 많고 잡기도 쉬워 생선 참치와 함께 즐겼다. 신선한 올리브 오일을 발라 숯불에 구워먹는다.

갑오징어도 좋아하는데 갑오징어 내장에 음식을 넣어 순대처럼 먹기도 한다. 당연히 그리스의 영향이 강한 동부 지중해에서도 잘 먹는다.

중세 페스트 창궐기에 오징어 먹물이 특효약이란 속설이 퍼지며 먹게 되었고 이후 몸 전체를 먹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선 이 먹물을 넣어 만든 ‘먹물빵’과 파스타가 일미다. 말린 오징어는 우리와 일본에서만 먹었다. 일어로 스루메(スルメ)라고 하고, 날오징어는 이카(イカ)라고 한다. 명절 때마다 귀성길 도로에서 이걸 파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직원들이 오징어, 갑오징어, 호래기 등 다양한 오징어를 소개하고 있다./롯데백화점 제공

실제로 오징어를 먹으면 멀미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맥주 집에서 마른안주로 ‘오징어와 땅콩’, 명태새끼인 노가리,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한치 등을 즐겨 먹었다. 그런데 온난화로 동해안 수온이 상승해 일찍 오징어가 북상해 비싸졌다. 이제는 중국 어선들이 남하하는 오징어까지 씨를 말리고 있다.

요즘 서울 마트에서는 오징어 한 마리가 5000~6000원 정도다. 1년 전보다 40% 이상 오른 가격이다. 최근 5년 평균값이 2630원이었다니 두배나 높다. 지난해 말 동해안 물치항 횟집에서 한 마리 1만5000원 부르던 것이 바가지가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해 북한 핵위기가 조금 누그러지면 미국이 중국 어선 조업을 묵인해주어 ‘오징어위기’가 올해도 지속되지 않을까? 새해 초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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