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성취에 경하를’ 이 아니라 ‘그대 행운에 감사를’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딸이 취업했다. 삼년의 취준 끝에. 최(종)합(격) 소식을 듣고 남편과 얼싸 안고 방방 뛰었다. 근 10년만의 격한 포옹 아닌가. 돼서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되었을 때를 상상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때가 때이니만치 자랑질은 자제했다. (이 글도 두 달 후 쓰는 겁니다.) 1호 조카는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주식 공부에 매진한다 하여 의아했는데 다닐 수 있었으면 그러겠냐 말 안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겠지 해서 그렇군 했고. 조카 2호는 외국 항공사 파일럿인데 무기한 무급 휴가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 있고. 조카 3호는 키워야 할 핏덩어리 쌍둥이 새끼 내세워 읍소 끝에 정리해고를 육아휴직으로 막음하고.

그나마 이름 알려진 회사에 다니던 이들이 그러하고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은 어찌 사는지 서로 안 묻는 게 예의가 되었다. 만날 일도 거의 없으니 굳이 연락해 들쑤시는 짓을 안 한다고나 할까.

그래도 터져 나오는 자랑을 봉쇄할 수는 없어(봉쇄하기 싫어) 친구들 위주로 슬쩍슬쩍 흘렸다. 돌아오는 반응의 온도가 미지근함에서 싸함까지 있었다.

한 동구권 작가가 소련이 최악이었던 것이, 지배자면서 사랑까지 받으려 했다고 어딘가 썼던데 잘 나가는 사람을 운수 나쁜 사람이 박수치고 환호해 줄 이유란 뭔가 하며 넘겼다.

미지근한 중에도 더 미지근함과 덜 미지근함이 있었는데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나를 애정하는 정도라거나 그 사람 인격의 완성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오해하지는 않았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대체로 그 사람의 신세가 편하냐 아니냐이다. 큰 걱정 없는 이들이 타인의 경사에 기뻐하더란 말.

나의 경사에 에너지를 끌어 모아 목소리를 한 옥타브 올리는 데 실패하거나 처지는 입꼬리를 비끄러매거나 새나오는 한숨을 소리 없이 삼키는데 실패한 이들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심플하게 기뻐해 주는 이들이 편한 것은 사실이니 이렇게 또 끼리끼리가 형성되는가 싶기도 하고.

▲ 2021년 신축년(辛丑年) 첫날인 1일 오전 강원 화천 해산령 전망대에서 새해 첫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뉴시스

나의 베프 한 명은 내 딸에게 금일봉을 하사했다. 메모엔 이렇게 써 있었다.

“긴 노력과 능력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음을 엄청 축하한다.“

행운을 얻었다는 표현이 약간 걸린다. 노력과 능력을 먼저 말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은 뭐지? 내 딸이 잘나고 똑똑해서, 삼년이나 고생고생해 응당 그럴만해서 그 일자리를 잡아챘다고 믿고 싶은 건가?

어느 수준의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맞다. 그 직장이 아무나 앉아 있어도 돌아가는 파놉티콘은 아니니. 그러나 1등의 능력과 1등의 노력이 있었기에 붙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일차 서류 심사에서 최종 면접까지 이르는 5~6 단계 그 어딘가에 있던 후보자들 가운데 ‘반드시 뽑혀야 마땅한’ 이도 없고 ‘뽑히는 게 너무 이상한’ 이도 없었을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 때 승리의 광채는 찬란하고 승자는 왔노라 싸웠노라 나 잘나 이겼노라 나대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경쟁률이 높을수록 자격을 갖춘 지원자도 많아 거기서 누가 뽑힐지는 그야말로 운이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생각을 마이클 샌델도 했다. 지원자가 넘쳐 나는 미국 유명대학의 신입생을 추첨으로 뽑자고 했다. 소숫점 몇 자리까지 따져 승자를 결정하는 게 공정하다고 믿는 이들은 정말로 황당해하겠지만 샌델은 무려 하버드 로스쿨 교수고 치매 걸릴 나이가 아니다.

저자 마이클 샌델

역자 함규진

와이즈베리 출간

tvN <월간 커넥트>에 나온 누군가는 샌델이 착하다고 하던데 정치 주장은 품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각설하고 다시 내 딸 얘기로 돌아가면, 그는 어떻게 뽑혔을까. 시쳇말로 운칠기삼이고 운은 두 차원으로 있었다. 모모한 공채가 열렸을 때 지원을 할 정도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장기적 운, 그리고 운 때가 맞았다 할 때의 시운.

진부한 얘기지만 삼신할미 랜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소녀 가장이었다면, 한 푼이 아쉬워 급한 대로 아무데나 취직해야 했다면, 투잡 알바와 장시간 이동에 시달렸다면... 취업 공부하느라 3년이나 고생했다는 말은 3년이나 경제활동을 (상대적으로 맘 편히) 유예받을 수 있었다는 소리다.

삼신할미 랜덤이 작용하는 더 중요한 방식은 멘탈이다. 한 사람의 꿈과 포부, 그것을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은 이룰 거라는 다소 안정적인 자기확신, 그것을 위해 지금의 안락을 상당 기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음, 이런 것은 그냥 새해맞이 결심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긴 시간 동안의 안정적인 보상체계가 합리성을 내장시킨다.

▲ 서울 성동구청 취업게시판을 한 시민이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대학 강의할 때 법대 학생 한 명이 -고시 최종 합격한 이라고 벌써부터 주위 친구들이 영감님 받들어 모시는 모양이라 그 구경이 볼 만했다- 자기는 몇 년 동안 밥 먹는 시간 빼고 아무 것도 안하고 죽어라 공부만 했다고 수업시간에 비장하게 말하던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었다.

그 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 직후였는데 말이지. 니들 놀 때 나 공부했어 부르짖는 고3 정신계의 아저씨들, 특정 직업군에 아주 많다. 그렇게 억울하면 때려가며 공부시킨 그대 부모께 푸시고요, 지 잘 살려 한 일에 응석 좀 그만 떠시고요. 만사 작파하고 공부만 했다는 게 자랑할 일만도 아니고요.

시운은 어떤 모습으로 왔나. 우리 가족은 일요일이면 허리 아플 때까지 누워 있다 배고파서 할 수 없이 일어나 대강 끌어모은 먹거리를 아침으로 먹고 커피를 점심으로 먹으며 두세 시간 기운 좋게 수다를 떤다.

그 날 입씨름을 벌였던 핫 이슈가 –정작 본인은 핫이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 후 면접 문제로 나온다면 이게 시운이 뻗친 게 아니고 뭔가. 면접관이 아빠와 동년배이고 아빠와 비슷한 정신 세계에 있는 아저씨들이라는 걸 깨달은 후 아빠의 실수를 각색해 면접관들을 웃겨주는 선방을 날리기도.

말보다 글이 백 배 편한 그는 면접에 가면 항상 많이 아쉬웠는데 면접관과의 래포 형성이 이리 순조로웠으니 우주의 기운이 돕는다고나 할까. 그 여유 속에 남들 다 말하는 교환학생 경험이 진부하다는 것도 알아챘고 남들 다 소심하게 원론만 강조할 때 현실적 딜레마를 솔직하게 건드리는 것도 가능했을 터.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승리는 얻어 걸린 것이니 오만하지 말라. 패자는 운수 나쁜 것에 불과하니 자학하지 말라. 잘나서 잘 나간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운 나쁜 이들을 못났다 경멸하면 그 분노는 트럼피즘으로 응결된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Tyranny of Merit>에 다 나오는 말이다. 사회를 원시적 폭력상태로 몰아가는 저 트럼프 지지자들!

오만과 경멸이라는 몹시 심리(학)적인 말들이 착하게 마음 먹고 살라는 샌델 아저씨 (할아버지) 훈계질이라 오해하지 말고 그것은 연대라는 사회적 태도를, 연대를 구체화할 사회 정치적 제도와 정책을 요구하는 키워드임을 상기하자.

▲ 지난달 7일 대구 경북여자상업고등학교에 ‘취업 성공’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교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속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을 축하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밝혔다./뉴시스

무엇보다 몸을 써 일하는 이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를. 덕분에 챌린지 같은 립서비스 말고 진짜 찐 존중. 돈 들어가는 존중, 돈 써서 하는 존중. 자본주의적 존중.

그래야 할 이유는 우리가 선해서가 아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나(혹은 내 새끼)를 어디로 몰아갈지 알 수 없다. (이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우리의 윤리를 박약하게 만든다.) 그러니 최악을 상정하고 그 최악에 내가(내 새끼가) 들어갈 수 있음을 상상하여 그 최악을 덜 최악이게 만들어 놓으라. 존 롤즈 <정의론>의 골자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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