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자본주의의 구조적 불평등을 지적한 토마 피케티의 논리는 과연 옳았는가.

▲ 김선태 편집위원

『애프터 피케티』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 마이클 스펜스 등 세계적 경제학자, 사회학자, 법학자 21인이 하버드 대학의 요청에 부응해 내놓은 논문집이다.

『21세기 자본』을 내놓은 뒤 피케티는 좋건 싫건 현대 정치경제학 또는 거시경제학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특별히 그가 제시한 ‘부의 불평등 공식’은 전 세계 정치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만큼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논쟁은 다양하게 곁가지를 치고 나갔는데 가령 피케티 공식을 부르는 명칭을 두고도 ‘근본적 불평등’에서 ‘조건에 따른 역사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념적 뉘앙스가 교차할 정도였다.(데이비드 싱 그레월, 560쪽)

경제적 결정론 뛰어넘은 역사 인식

책은 지난 3년에 걸친 학계의 반응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누어 관련 분야 석학들의 입장을 실었다. 먼저 ‘피케티 현상 : 환대와 반발’은 이 현상이 경제학계를 넘어 정치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어 나간 배경을 분석했다. 이어 ‘자본의 이해’ 에서는 상호 대립적인 관점 또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해석들을 소개한다.

이어 ‘불평등의 규모’ 라는 제목하에서는 주로 피케티의 논의를 다각도로 검증하는 글들을 실었고, ‘자본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은 피케티의 논의가 몰고 온 이념적 쟁점, 그 필수적인 부산물인 정치적 쟁점을 소개했다. 가령 ‘불평등 정치학’계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제이콥스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 『21세기 자본』에서의 정치’에서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라는 피케티의 주장에서 논의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녀에 따르면 피케티가 경제 불평등을 구체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은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글로벌 부유세에 대한 피케티의 유토피아적 비전 같은 유망한 아이디어는 환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634쪽)

▲ 『애프터 피케티』 = 토마 피케티, 폴 크루그먼, 마이클 스펜스 등. 유엔제이 역. 율리시즈. 780쪽. 2017.11.30.

이 책에서 단연 주목할 글은 피케티 자신의 것이다. 피케티는 많은 논쟁 가운데 특별히 경제학과 사회과학(사회학) 사이에 벌어진 간극에 주목했다. 『21세기 자본』은 경제학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이후 20여 개국에서 일어난 부와 소득의 변화와 관련된”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분배와 불평등의 유형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당연하지만 사회과학적 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이 제기되어 왔는데, 피케티는 그 중 특히 ‘자본과 권력 관계’를 둘러싼 논의에 답하고 있다.

상기하자면 맬서스, 리카도,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분배’는 19세기의 정치경제학에서 언제나 분석의 중심이었다. 맬서스는 인구 과잉이 혁명을 초래할지 모른다고 보았고 리카도는 지가 상승에서 그와 같은 동기를 읽었고 마르크스는 임금에서 그 조짐을 확신했다. 피케티가 보기에 그들의 문제의식은 적절했지만 이를 입증할 체계적인 사료가 부족했다. 사료 수집은 20세기 내내 지속되었고 자신은 그 계승자일 뿐이며 단지 프랑스의 지적 전통이 비교적 나은 영감을 제시해 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을 경제 결정론자라고 비판하는데 대해 피케티는 이렇게 답한다.

“이 책(『21세기 자본』)의 주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불평등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자들이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부당한지에 대해 형성한 표상들, 이 행위자들 사이의 역학관계,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집합적 선택들에 의존한다. 불평등의 역사는 연관된 모든 행위자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642쪽)

근대 정치경제학의 역사를 아는 독자라면 피케티가 이처럼 말할 때, 유명한 사적 유물론의 정의를 내리면서 마르크스가 “그간 내가 역사를 연구하며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며 운을 뗐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확실히 피케티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경제 결정론과 닮은 면이 있지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동기를 경제적 동기와 동급에 놓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와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분석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갖게 된 배경으로 피케티는 ‘지배적인 신념 체계의 급격한 변화’를 다룬 칼 폴라니의 역저 ‘거대한 전환’에서 받은 영향을 소개한다.

“자본을 통제하려면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개조해야”

같은 맥락에서 피케티는 ‘자본’의 개념에 대한 다차원적 해석을 강조한다. 이는 좌파 학자들이 그의 자본 개념을 비마르크스주의적이라 비판하고 우파 학자들이 그의 자본 개념을 마르크스주의적이라 비판한 점을 의식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재산관계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나아가 피케티는 다음과 같이 자본 개념의 유동성을 강조한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경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노예제도다. 대기, 바다, 산, 역사적 유물, 지식과 관련된 재산도 마찬가지다. 몇몇 개인은 이러한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단순한 사익이 목적이 아니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자신의 그런 욕구를 정당화한다. (...) 자본은 불변의 개념이 아니며 각 사회의 발전 단계와 지배적인 사회관계를 반영한다.”

▲ ‘가난한 작가와 부유한 서적상’ = 워싱턴 올스턴. 1811. 캔버스에 유화. 보스턴 미술관 소장.

이어 피케티는 『21세기 자본』 3~6장에 걸쳐 전개한, 그럼으로써 그를 논쟁의 중심에 서게 만든 대목 즉 ‘자본주의의 두 가지 기본법칙’에 관해 언급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그가 말한 법칙은 혁명의 법칙 같은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심지어 ‘제1법칙’은 (독자들이 핵심개념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기억하도록 돕기 위해 고안한)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650쪽) 어쨌든 “소득 대비 자본의 비율이 높아져 자본소득 점유율이 증가하면 부의 격차가 누적적으로 커진다”는 제1법칙의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를 ‘제2법칙’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자본이 분산되어 부의 격차가 축소된다”로 귀결되는 이 법칙은 사실 ‘역사적인 시계열 자료에서 포착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결론을 도출하는 피케티의 공식은 21세기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부의 불평등이 거침없이 확대되어 가는 현상을 해석하는데 대단히 유용한 틀로 활용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문화자본과 상징적 자본에 근거한 지배 형태’를 제기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은 마르크스의 관점으로는 포착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관점으로는 충분히 포괄할 수 있다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피케티는 경제적 불평등의 해결이 정치적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피케티의 자본론을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구별 짓는 결정적 차이점이기도 하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전 세계 석학들이 피케티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더욱 명확히 하고자 피케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특히 불평등과 경제에 대한 인식에 있어 격렬한 정치적 충격(전쟁, 혁명, 경제 위기)의 역할뿐 아니라 장기적인 학습곡선의 역할과 국가적 정체성의 교차효과도 강조했다.”(659쪽)

그러므로 당연한 귀결이지만 피케티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자본세 도입, 구체적으로 ‘소득과 자본에 대한 누진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만이 “사유재산을 영구적 현실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으로 바꾸며, (...) 많은 면에서 영구적인 농지개혁과 맞먹”기 때문이다. 어떤 내외적 충격으로 인해 소유 형태가 어떻게 변해 나갈지는 모르지만 그 모든 경우에 대해 “민주적 제도는 계속 재구성되어야 한다.”(661쪽) 피케티는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가운데 비로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이와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탄생한 책이 『21세기 자본』임을 알고 나면 독자들은 수많은 석학들의 칭찬과 비판 사이에서 나름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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