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마무리됐다.

27일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결심(結審)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433억여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과 동일한 구형 형량이다.

▲ 최성범 주필

박영수 특검은 재판에 직접 출석해 "피고인들이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로 국민 주권의 원칙과 경제 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결심 공판이 마무리된 만큼 ‘이재용재판’은 1심에서 5년 실형이던 선고 형량이 내년 2월 5일로 예정된 2심 선고공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이젠 촛불혁명이 시작된 지도 1년이 지난 만큼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쟁점을 짚어 볼 시점이다.

우선 공방의 핵심은 433억여원이 뇌물인지의 여부다. 박영수 특검은 이날 결심에서 “이 사건은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 뇌물을 준 정경유착 사건의 전형”이라고 구형 이유를 정리했다.

여기서 핵심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했는지의 여부다. 청와대 안가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은 2015년 10월과 2016년 2월 두 번인 것은 확인됐다.

문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서 중요한 열쇠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기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독대 시기가 2015년 10월과 2016년 2월이라면 합병이 이미 완료된 다음이라서 뇌물 공여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뤄진 시기는 2015년 7월이다.

특검이 2014년 9월 12일 안가에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독대했다는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의 증언을 추가로 제시한 것도 사전 청탁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정황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 전 비서관은 지난 18일 재판에서 면담 날짜와 전화번호 기재 시기 등에선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검찰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술했다는 의혹마저 나오는 실정이라 재판부의 증거 채택 여부가 주목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공여'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부회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 2014년 9월 12일 이른바 '청와대 안가 독대는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9월 12일에는 만난 적 없다. 확실하게 말씀드린다"며 "제가 기억 못 하면 적절치 못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제가 치매"라고 울먹이며 강조하기도 했다.

두 번째 쟁점은 청탁의 필요성이다. 특검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라고 주장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은 삼성을 표적으로 한 최순실씨의 강요·공갈의 결과이지 뇌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대통령에게 뇌물을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한 적이 없으며, 대통령이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433억원에 대해서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라는 게 이 부회장의 변이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및 삼성 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3자 발행 등에서 나타났듯이 경영권 승계작업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순실의 강요에 의해 사회공헌하는 심정으로 돈을 냈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중형의 이유가 된 뇌물 공여와 관련해선 최후진술에 담겨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진심을 믿고 싶다. 우선 청탁의 시기가 잘 맞지 않으며, 대통령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청탁의 필요성이 있었는지도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방대한 수사를 했음에도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한 채 이른바 합리적 추론(reasonable suspicion)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이는 특검 수사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애당초 무리한 수사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먼 훗날 이 재판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적 재판, 여론 재판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기업 경영활동에 전념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신파조의 주장을 펴고 싶지는 않다. 선진화된 민주사회라면 엄격한 증거주의에 입각한 재판과 판결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재판부가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에만 입각한 소신 있는 판결을 내리길 기대한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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