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세계 최대 선물 거래소 미국 CME(시카고상품거래소)가 18일(한국 시간)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했다.

▲ 최성범 주필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시장에 본격 데뷔하면서 투자 역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시장에서 1만8900달러로 시작한 비트코인 현물가격은 초기에 소폭 하락했다가 2만 달러대 가격에 거래돼 순조롭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미국 시장에서의 제도권 진입이 호재로 작용해 현물 가격이 2100만원대에서 형성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제도권 진입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우선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가 아직 통화 대우를 받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상품(자산)으로 인정 받은 셈이다. 국내에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금융당국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일단 과도한 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상태에서 과세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중인 반면 금융 강국 미국은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먼저 인정한 셈이다.

금·은·곡물 등 일반상품과 주식·채권·통화·주가지수 등기초자산(underlying assets)이 바탕으로 선물이 존재하듯이 실체가 명확치 않은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초자산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앞장서면서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암호화폐를 최소한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보혁명의 시대에서 자산 가치의 개념이 바뀔 것임을 예고한다.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제조업 중심의 경제에선 실물 자산을 중심으로 가치가 형성되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사회에선 연결망 참여자 수가 가치가 된다. 이더넷 표준을 창안한 밥 멧칼프(Bob Metcalfe)는 통신 네트워크의 가치는 전화기, 팩스 등 그 네트워크에 부착된 통신기기(communication devices)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이른바 멧칼프의 법칙(V=N²)이다. 과학 평론가 조지 길더도 정보 우주의 법칙(Law of Telecosm)에서 전산기의 가격 대비 성능은 망에 연결된 전산기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유사한 주장을 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터넷 시대에선 자산 가치가 네트워크 가치가 될 것임을 말해준다. 실제 암호화폐의 발굴(마이닝) 과정은 멧칼프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가치 저장, 교환 수단이라는 통화의 본질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이점에서 경제학자나 금융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암호화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인 것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 세계 최대 선물 거래소 미국 CME(시카고상품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했다는 것은 비트코인이 최소한 상품(자산)으로 인정 받은 셈이다. 모든 비트코인 거래 내역이 기록된 공개 장부인 블록체인 기술이 미래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비트코인 그래픽./뉴시스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계 유명 이코노미스트 53명을 대상으로 ‘비트코인이 버블인가’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96%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응답자 53명 가운데 51명이 비트코인은 버블이라고 대답했다. 비트코인 버블론자들은 비트코인 폭등세가 1630년대 네덜란드 튤립 투기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담보대출) 열풍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통화에 관한 기존 사고로는 이들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앞으로 네트워크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통화가 등장할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는 건 분명하다.

비트코인 열풍 20~30대 주도…블록체인 시대 도래 예고

셋째, 비트코인 열풍는 앨빈 토플러가 말한 권력 이동(power shift)이 금융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 정치권, 언론의 권력이 SNS를 앞세운 시민에게 넘어가고 있듯이 국가가 발권력을 기반으로 힘을 쓰기가 더 이상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미국이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면서 주조(seignorage)효과를 누리는 데 문제점을 인식하고 비트코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각국 정부가 암호 화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국가와 시장, 개인간의 관계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게 분명하다.

넷째, 과도한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올들어 6배나 오르고 초등생도 투기에 가담한 현실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가 닷컴 버블에서 시작됐듯이 블록체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비트코인 투기 열풍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특히 비트코인 열풍을 20~30대가 주도했다는 점은 젊은 세대가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설사 비트코인이 새로운 통화로서 자리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으며, 이러한 젊은 세대의 확신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좋든 나쁘든 젊은 세대가 믿고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컴퓨터가 옆에 있었고, 초등학교 이후 휴대폰을 지니고 있던 세대로선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어떤 것도 가치가 없다고 여길 게 분명하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통화 또는 암호통화가 달러 등 기존 통화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앞으로 금융 시스템 등 미래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거라는 점이다. 비트코인 열풍은 그 신호탄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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