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경기력과 관련한 문제점을 분석 받아 이를 개선하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현시대에는 더욱 향상된 자신의 경기력을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 과정도 공유하고 싶은 니즈도 존재한다.

▲ 이현우 텍사스A&M대학교 교수  

지금까지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경기 분석은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KISS)’에서 올림픽 등 국가대표에 선발된 선수의 기량 향상에 초점을 맞춰 오랫동안 이들의 경기력 향상에 힘써 왔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 분석에 사용되는 과학과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는 물론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 프로 팀들은 경기력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업체들과 계약을 맺어서 훈련 및 경기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 프로그램 개발 및 선수 선발에 도움을 받고 있다.

더 나아가, K리그는 국내를 기반으로 한 경기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업체인 ‘비프로 일레븐 (Bepro 11)’과 계약을 맺어 각 구단 산하에 있는 유소년 팀들 또한 경기를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도자와 선수는 체계적인 훈련에 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밑거름이 제공되었다. 이러한 성장세와 우리나라의 IT 기술력을 감안해볼 때, 국내 기업들도 세계 스포츠 경기 분석 산업에 진출해서 자리잡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든다.

스포츠 산업 강국인 미국에서는 IBM, SAP, STATS와 같은 대형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프로 스포츠 경기와 관련된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거의 모든 프로 팀들이 데이터 분석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아마추어 또는 군소 리그들은 이런 대형 기업의 서비스를 위한 예산이나 인적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 지난 7월 15일 오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하나은행 FA컵 16강전 대전하나시티즌과 FC서울 경기에서 최용수 서울 감독과 황선홍 대전 감독이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여기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간편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중소 기업들의 출현과 성장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허들 (Hudl)’이란 회사는 단순한 경기력 분석 솔루션을 통해 경기력 분석 시장에 진출해서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2006년 설립된 허들은 저렴한 가격에 기초적인 경기력 분석 솔루션을 간편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빠르게 아마추어 경기력 분석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갔다.

무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연간 1백만 원 수준부터 받을 수 있는 저렴한 경기력 분석 서비스는 미국 내 고등학교와 대학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를 필두로 허들은 전략적으로 스포츠로 유명한 학교들에 자신들의 앱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학교들과 적극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이제는 대다수의 아마추어 팀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규모를 늘린 허들은 주요 경쟁사들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 인터넷으로 코칭과 분석을 할 수 있던 최대 경쟁사인 ‘Digital Sports Video’의 인수를 시작으로, 올림픽 선수들이 사용하는 경기 분석 프로그램인 ‘Ubersense’까지 인수하였다.

그리고 아마추어 선수 분석에 최적화되었던 허들은 여러 국가의 프로 스포츠 팀에서 사용하는 ‘Sportstec’ 까지 인수하게 됨으로써 전문성까지 높이게 되었다.

▲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류현진이 지난 8월 22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의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열린 2020 메이저리그(MLB)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1회 투구하고 있다. [세인트피터즈버그=AP/뉴시스]

또한, 종목에 국한되지 않기 위해 배구 경기 분석 프로그램인 ‘VolleyMetrics’, 농구, 하키, 라크로스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Krossover’, 그리고 2019년에는 전 세계 프로 축구 스카우트 및 에이전트가 사용하는 플랫폼인 ‘Wyscout’ 까지 그들의 손에 넣게 되었다. 이는 자본으로 시장을 잠식하는 미국적인 사업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허들의 성장 이야기는 과거 칠·팔십년대 비디오 카세트 시장의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비디오 테이프에 대한 기술력은 소니사의 베타멕스(Betamax) 방식이 더 뛰어났지만, 시장을 차지한 것은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레코더 방식인 JVC사의 VHS 방식이었다.

이는 기술력보다는 시장점유에 힘을 쏟은 공로가 컸다. 허들의 공격적인 무료 배포와 서비스 개발 및 인수합병을 통한 성장은 쾌도난마의 형세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후발 주자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인가? 필자는 현시대가 모든 사람들이 콘텐츠를 양산할 수 있는 일인 크리에이터 시대임에 주목해본다.

▲ 토트넘 손흥민(오른쪽)이 지난 2월 16일(현지시간) 영국 버밍엄 빌라 파크에서 열리는 아스톤 빌라와의 2019-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26라운드 원정 경기를 앞두고 동료들과 몸을 풀고 있다. [버밍엄=AP/뉴시스]

선수를 발굴하는 스카우트 시장을 통해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선수들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선수 평가를 위한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이제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하이라이트 영상들은 스카우트들이 재능을 포착하고 실제로 확인해보는 노력과 수고를 간소화 시키고 있다.

스포츠 참여자의 믹스 테이프 제작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다양한 영상 편집 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이 많지만 스포츠에 특화된 영상 서비스에는 아직도 경쟁의 여지가 있다. 실제로 최근 시장조사에 의하면 허들을 사용하는 선수와 코치들이 공통적으로 허들의 영상 편집 기능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에 집중해서 후발 주자들이 스포츠 콘텐츠의 생산자인 선수들과 코치들을 사로잡을 솔루션을 제공한다면, 시장 저변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선수와 팀들이 자신들의 콘텐츠를 녹화하고 편집하는 방식으로 특정한 플랫폼을 선호하고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를 받아보고 분석해야하는 상위 리그 팀들 또한 그 플랫폼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의 필요와 욕구에 주목해서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성을 강조해본다.

지금은 비디오 테이프가 시장 점유율로 싸우던 시대가 아니다. 스냅챗이나 틱톡이 콘텐츠 제공 방식으로 사용자들을 사로잡았듯, 스포츠 경기력 분석에 사용될 콘텐츠의 플랫폼으로 경기력 분석 서비스 사용자들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경기력 분석을 위한 기술력은 물론이고, 선수와 팀들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야하는 아마추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그들을 사로잡는다면, 국내 경기분석 업체의 세계시장 진출도 허황된 꿈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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