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축구 시합에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플레이나 새로운 전략을 일일이 물어보지 않으면 룰 위반이 될 수 있다면 축구 경기가 어찌 될까. 아마도 선수들은 틀에 박힌 플레이만을 하게 될 것이다.

▲ 최성범 주필

또한 경기 도중에 경기를 멈추고 심판에게 일일이 물어 봐야 할 것이다. 절묘한 드리블로 수비를 몇 명 이상 제쳐도 되는지, 롱킥이 허용되는 거리는 최대 얼마까지인지 등. 결국 창의적인 플레이는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또한 경기가 툭하면 중단되거나 심판이 판단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경기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다.

경기가 진행된다고 해도 그 경기를 보려는 관중은 아마도 없을 게 뻔하다. 심판이 어떤 플레이를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선수들의 플레이는 대본으로 짜여진 셈이 되고, 당연히 스포츠가 갖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시합도 없어질 것이다. 메시 같은 선수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법에 명시된 것만 가능하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성명서를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발표했다. 4차 산업혁명이 급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신기술과 서비스로 무장한 새로운 사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도 현행 법체계는 허용한다고 법상에 열거하지 않으면 금지로 간주하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라서 정부가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축구 시합에서 허용가능한 플레이를 일일이 규정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플레이는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이 제한하지 않으면 가능하도록 하는 네거티브(negative)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외국에서 성공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경우 받드시 부딪히는 장애물이 바로 포지티브식 규제 시스템이다. 열거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 열거되지 않으면 법적 근거를 갖지 않는 사업이 되므로 불법이 되는 방식이다. 공무원기업인들이 행정 당국을 쫓아다니다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지쳐서 포기하고 만다는 현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사고 틀 속에 나라전체를 묶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드론, 우버,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분야는 다 불법이 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방식의 규제 시스템은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해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법체계와 비즈니스 관행 전반에 매우 깊숙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런 시스템은 공무원 입맛에 맞지 않는 일은 괜히 했다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민간의 창의성을 매우 심각하게 저해한다.

특히 정경유착을 부추기기도 한다. '해도 되는 것'에 해당하는지가 확실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정치권과 규제 당국이 규제 변경과 해석을 통해 사업 허용이나 불허뿐만 아니라 형사처벌 여부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탈세를 가능케하기도 한다. 세무당국으로선 법에 열거되지 않을 경우 소득이 발행하더라도 과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인공지능(AI), 드론, 우버, 에어비앤비 등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포지티브규제를 네가티브 규제로 바꾸려는 범국가적인 대혁신이 필요하다. 사진은 이세돌9단이 인공지능과 바둑대결을 벌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사업을 하려는 스타트업일수록 포지티브 규제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마련이다. 새로운 사업의 유형이라서 기존 법제도상으로 열거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포지티브 규제는 결국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제도인 셈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시대, 즉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혁신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엔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신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사업이 숨가쁘게 등장하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번번히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 범국가적인 대혁신 필요…경제분야 적폐인 포지티브규제 철폐해야

이른바 '공유 경제' 내지 '온 디맨드 경제'의 경우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숙박부터 주차장까지 공유 경제와 관련해서는 많은 법이 실타래처럼 묶여 있는데 법에 없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게 현실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현행 규제를 이유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시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국내 산업 생태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나아가선 혁신 주도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사업자와 신생 스타트업간의 경쟁은 불가피하며, 누가 시대변화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할지는 시장이 판단한다"며 "공무원이 나서서 관행과 규정을 앞세워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네가티브 시스템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한국은 규제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중국보다 앞선 경우가 없는 게 당연한 셈이다.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10년 미만 신생기업을 일컫는 유니콘 기업 100개 중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신규 비즈니스를 금지하는 법령이 없는 한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하려는 공무원들의 마인드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고 한다.

포지티브 규제를 네가티브 규제로 바꾸기 위해선 일시적인 노력만으론 안 된다. 국가의 법 제도 전반에 대해, 장기적으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신경민의원이 신산업네거티브규제전환법‘을 대표발의했지만 한 두 가지 법안으론 턱도 없다. 수십년간 누적된 법과 제도를 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차원, 나아가 범국가적인 대혁신이 필요하다.

그동안 규제개혁를 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근본 틀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의 적폐는 기득권 중시, 행정편의주의의 바탕이 되는 포지티브 규제라는 점을 현 문재인 정부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철폐하지 않고선 혁신성장 정책도 헛된 공약이 되고 만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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