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초겨울 광화문의 주말 분위기는 언제나처럼 소란스러웠다. 지난해 촛불집회 때의 대규모 인파는 아니더라도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한 하얀 천막과 노란띠 뭉치, 여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의 시위로 마이크 소리와 구호 소리가 요란하다.

▲ 남영진 논설고문

아직도 가을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은행잎과 가로수 낙엽들이 흩날리는데 미국대사관 골목과 세종문화회관 길에는 포돌이 마크의 경찰기동대차가 줄지어 대기해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젠 익숙한 광화문광장의 분위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청 앞 광장과 덕수궁 골목길 등에서 펼쳐졌던 풍경이 그 사이 최순실 국정농단 항의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요구 시위를 거쳐 자연스레 광화문으로 옮겨왔지만 그 규모나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촛불집회에 맞서 보수 세력들의 박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장소로 이용됐던 시청광장은 이제는 집회나 시위보다는 서울시의 축제나 공연장으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언론들이 지난달 말 촛불집회 1주년 특집을 실으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큰 획을 긋는 의미를 되새겼다.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촛불집회는 국회의 박근혜 탄핵과 대통령 직무정지,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요구를 인용하면서 파면을 결정했다.

곧 조기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적폐청산’이 압도적 지지를 받아 정권이 교체됐다. 새 정부에서는 최순실, 박근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판과 전 청와대, 검찰, 국가정보원에 대한 인적 청산작업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촛불이후 겨우 1년이 지났지만 올해 초부터 북한의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갈에 가까운 ‘말싸움’ 때문에 우리는 지난 세월이 10년처럼 느껴진다.

작금 일련의 과정에서 한반도의 주변 정세는 우리가 처한 약소국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했다. 촛불집회가 국민에게 주는 정치적 학습효과는 컸지만 과거청산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으로 실행까지는 저항의 강도도 작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과거를 답습하는 ‘보여주기 정치 쇼’가 아닌 ‘품격 있는 정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촛불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학계와 시민사회의 고민이 깊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확대됐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이견도 만만찮다.

▲ 지난 12일 서울 중구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2017 전태일열사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을지로를 지나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있다./뉴시스

촛불이후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현실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광장정치의 확대’는 대의민주주의의 약화를 초래한다고 그 부작용을 강조하기도 한다.

연성수 국민참여개헌 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촛불항쟁 과정에서 표면화된 직접민주주의를 향한 국민 열망을 개헌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 대표는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등 현행법 상에 도입돼 있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더욱 보완해 대의제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며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 마치 대의제를 다 부정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대의제의 단점을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보완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계에서도 촛불항쟁이 한국 민주주의에 과제를 던졌지만 자칫 광장정치의 확대로 갈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를 표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의 민주화 30년' 포럼에서 "광장 정치를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 추구는 커다란 방향 착오"라며 청와대가 국민청원 제도를 만들자 '소년범 처벌 강화' 등 청원이 쏟아진 것을 예로 들며 싼 비용으로 많은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의회정치의 강화를 강조한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 방한한 지난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웰컴 트럼프'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촛불집회는 국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거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현 정치에 대한 불만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진정한 대의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구조 설계를 제안했다.

박 교수는 "국민 의사의 절반은 의회 진입이 차단돼 제도 밖에서 시위하고 농성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며 국회의원 수를 최소 510명 이상으로 늘려 국회의원 1인당 인구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사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분출하고 있지만 촛불이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촛불은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라며 “시민의 자발적인 촛불이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태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도 "광장의 촛불을 통해 철 지난 단어로 치부되던 '민주주의'가 재조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19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민주화가 가속화되면서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공론의 장이 확대되고, 시민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은 고도성장을 해왔다.

규모면에서나 사회적 영향력 면에서 급격한 성장을 해온  평화적인 시민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 SOFA(한미행정협정)개정,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 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반대운동, 이라크파병 반대운동, 한반도 대운하 반대운동,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배치 반대운동 등 많은 촛불집회를 주도해 왔다.

▲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조선 시대 신문고(申聞鼓)는 1401년(태종 1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할 목적으로 대궐 밖에 설치한 북이다.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이 북을 쳐 임금에게 알렸다. 그러나 북을 함부로 치면 오히려 큰 벌을 받았다.

또 북을 칠 수 있는 사건의 종류가 매우 제한되어 있어 실제로는 거의 이용되지 않았다. 연산군 시대에 결국 폐지됐다가 영조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민심을 얻기 위해 1771년(영조 47년) 다시 부활시켰다.

신문고 제도가 활발히 운영된 것은 태종∼문종 대였으며 성종때 격쟁제(擊錚制·징을 쳐서 억울함을 알리던 제도)를 실시해 신문고의 기능을 대행했다. 영조는 “신문고의 부활 뒤 오래된 사건도 다시 처리해야 돼 남잡(濫雜·지나치고 잡스러워짐)해졌다”는 이유로 철거한 적도 있다.

지난해 촛불은 광화문광장의 신문고나 격쟁이 한양 천도 600년 만에 실제 부활된 것으로 보고 싶다. 영조가 우려했듯 국민들이 이를 남발하고 자기이익만을 도모할 경우 다시 ‘남잡’으로 인해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역사적 의미를 잘 유지해야 할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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