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 가는길 ① 80년대 연화광산에서 일한 친구와의 동행…‘개발과 환경의 대립’

[이코노뉴스=글·사진 남영진 논설고문] 왜가리가 폐사했단다. 소나무는 말라 비틀어 죽고, 낙동강 상류가 중금속으로 오염됐다고 한다. 바로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주변 이야기다.

마음이 무거웠다. 나름 환경 문제에 관심 있고, 소싯적부터 금강 상류 냇물에서 천렵을 즐겼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왜가리는 천연기념물인 황새나 두루미보다는 개체가 많은 편이지만, 오염되지 않은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보호종이다.

소나무는 산성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우리나무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총 유역 면적만 2만3860㎢에 달할 만큼 시원(始源)인 강원도 황지(태백)에서 지금은 없어진 김해 을숙도까지 경상남북도 전체를 흐른다. 영남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그런데 석포제련소가 이런 걸 다 망가뜨려 놓았다고 하니!

대학 동기 모임에서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다가 “왜 하필 낙동강 상류지?”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자 동기가 “무슨 말이냐‘고 끼어들었다.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의 굴뚝에서 하얀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자 친구는 “학교 다닐 때 뭘 배웠냐?”고 핀잔을 줬다. 제련소는 광산과 가깝고 공업용수가 풍부해야 하니 석포 아연제련소의 경우 낙동강 상류가 최고의 입지였단다. 왜가리 몇 마리와 소나무 몇 그루 죽는 건 당시는 문제도 안됐다는 투였다. 하긴 대한민국 전체가 산업 개발에 매달리던 때니 환경 문제에 매달릴 상황이 아니었다.

◇ “광맥 찾으러 막장까지, 지질탐사 죽을 고생...산업역군 자부심”

이 친구 박연욱은 대학졸업 후 바로 석포제련소에 아연광석을 공급해주던 연화광산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2013년 대학입학 40주년 동문 행사 때 처음 만나 친하게 지낸 사이다. 나는 박연욱이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다 사업을 한 줄로만 알았다.

사연인즉 친구는 1980년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잠깐 지질연구소에 근무하다 답답해 현장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영풍광업에 입사했는데 첫 근무지가 바로 아연광석을 캐던 봉화 제1연화광업소에 이어 태백산맥을 넘어 있던 삼척 덕풍계곡의 제2연화광업소였다. 여기서 4년간 지질탐사를 했다.

연화광산은 일제 때 미쓰비시(三菱)가 전략물자인 아연, 납 등을 캐던 곳이다. 해방 후 폐광됐던 연화광산을 영풍광업이 인수해 다시 채굴했다.

그런데 이 영풍광업은 현재 석포제련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영풍과는 엄밀히 말해 다른 회사란다. 영풍은 영풍상사가 이름을 바꾼 법인으로 처음에는 종합상사를 업으로 하다 1970년 석포제련소를 가동하면서 아연제련업에 일관했다.

반면 영풍광업은 석포제련소에 아연광을 공급해오다 90년대말 연화광산이 폐광하면서 업종을 바꿔 영풍산업, 영풍건설로 개명했으나 2000년대 초반 건설사업 실패로 최종 청산됐다.

두 회사는 형제가 각각 이끌었지만 임원진 교류도 전혀 없을 만큼 철저하게 계열분리와 독립경영 방침을 견지했다고 한다. 그런 석포제련소가 올해로 딱 50주년이다.

당시는 청량리역에서 영동선 기차로 황지까지 가서 다시 회사차로 갈아타고 태백산맥을 넘었다. 덕풍계곡에 있는 ‘하늘아래 첫 동네’였다. 거의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가보니 ‘땅뙈기 300평, 하늘 3000평’밖에 안 보이는 첩첩산중 무인지경이었다.

이후 친구는 영풍이 소유한 충북 음성의 무극금광을 다시 채굴 할 때 그곳으로 옮겨 3년을 더 근무했다. 친구는 “그때는 광맥을 찾으러 막장까지 들어가 지질탐사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했지만 나라경제에 도움이 되는 산업역군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 “개발 시대엔 탄광촌 계곡물 검게 물들고, 오십천도 석회질로 탁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이후 가끔 은퇴한 친구들과 당구나 치며 소일하다가 훌쩍 강원도나 경북지역 공기 좋은 데로 떠나고 싶던 차였다.

▲ 1980년대 영풍 석포제련소 모습/영풍 홈페이지 캡처

물 맑은 곳에 가서 맛난 음식도 먹고 며칠 쉬고 오자는 내 제의에 친구는 젊은 시절 근무했던 봉화, 강원도 삼척 원덕의 연화광산 쪽을 떠올렸다.

현직 기자시절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와도 교류를 쌓아온 ‘반(半) 환경론자’인 나와 평생을 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산업 개발론자’인 친구가 직접 현장을 답사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자는 명목으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먼저 석포제련소로 달려가기로 했다. 지난달 29일이었다.

중부고속 하남휴게소에서 만나 봉화 석포제련소까지 가는 데 2시간 반밖에 안 걸렸다. 쭉쭉 뻗은 제2영동, 중앙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옛 생각이 절로 났다.

대학 때인 1970년대 초 강원도 동해안을 가려면 청량리역에서 ‘3등 3등 완행열차~’인 밤차를 타면 자정 무렵 소백산맥 죽령고개인 희방사역을 들렀다. 이어 암흑 속에 또아리굴을 지나 새벽녘에야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정동진 모래해변과 넘실대는 파도를 볼 수 있었다. 거의 8시간의 장정이었다.

80년대부터는 영동고속도로가 생겨 음성, 제천, 원주 등을 지나 태백산, 함백산 근처 사북, 고한, 황지 등을 갈 수 있었다. 지금은 영주에서 봉화, 승부, 춘양, 석포, 도계로 이어지는 영동선에 겨울 눈꽃열차가 인기다.

탄광촌을 지나던 계곡물은 검게 물들었고 태백정상을 넘어 바로 있는 미인폭포에서 삼척 죽서루 쪽으로 흐르는 오십천도 석회질이 많아 희부옇게 보였다.

◇ 하얀 수증기 뿜어대는 굴뚝, ‘공해시설’…냇가엔 1급수 어종인 ‘갈겨니’

어느덧 ‘산골 마을’ 봉화군 석포에 들어서니 제련소 곳곳에서 흰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부터 눈에 들어온다. 뒷산에 소나무도 듬성듬성 죽어 있다.

공장 사이에 예전 탄광지대에서 볼 수 있던 컨베이어 벨트도 설치돼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영락없는 유해 환경시설이나 다름없었다.

제련소 앞을 흐르는 석포천은 예상과 달리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무척 맑았다. 냇가를 따라 내려오면서 친구는 피라미가 몇 마리가 보인다고 했는데, 1급수 어종인 ‘갈겨니’일 것이다.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옆을 흐르는 석포촌 냇물이 생각보다 깨끗해 보였다.

전화를 걸고 곧바로 제련소를 방문했다. 박영민 석포제련소 소장은 회사 선배를 만난 것처럼 예우하면서 우리를 반겨줬다.

친구도 “40년 전 연화광산에서 근무했지만 제련소에는 한 번도 와보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든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감회가 새롭다. 공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크다”고 덕담을 건넸다.

박 소장은 공장 외형이 커져 단일 공장으로 세계 4위, 수출량으로 세계 9위의 회사가 됐지만 환경문제 때문에 장치산업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첫눈에 표정이 밝은 인상이었는데 왠지 얼굴에 그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 소장은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좀 달라는 겁니다. 지난 50년간 큰 탈 없이 아연 제련공장을 잘해왔는데 이제 와서 공해산업이라고 막무가내로 당장 폐쇄하든지 다른 곳으로 옮기라니 저희로서는 난감할 뿐입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환경부의 조업정지 명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소장은 영풍그룹이 호주 퀸즐랜드에서 가동중인 아연제련소에서 소장으로 일하다 3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오자마자 환경부로부터 2018년 폐수배출 관련으로 20일 조업정지 처분을, 지난해 4월엔 폐수를 적정 처리시설이 아닌 빗물저장 이중옹벽조로 이동시키는 배관을 무단 설치해 이용했다는 등의 이유로 120일간의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다.

◇ 수천억 투자해도 ‘낙동강 상류 공장’ 낙인…소나무-왜가리 함께 사는 길은

경상북도가 20일 조업정지 명령은 이행했지만 120일 조업정지 명령에 대해서는 ‘시설이 불법적으로 운영된 건 처벌받아야 하지만 폐수가 강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닌데 조업정지 처분은 과도하다’며 1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에 마찰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북도는 결국 이 문제를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업계에서는 120일 조업정지는 사실상 공장 문을 닫으라는 ‘명령’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단다. 일관 화학 공정 특성상 제련소를 한 번 멈추면 사전 준비와 재가동에 최소 1년 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제련소 정문

석포제련소도 환경단체들이 지적한 오염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미 2015년부터 18년까지 1,400여억원을 노후 시설개선과 환경정화에 투자했다. 또 지난해부터 내년말까지 3년간 수질 및 대기개선, 토양정화, 산림생태복원 등에 2,000여억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회사의 자구노력은 하나도 티가 안 나고 ‘낙동강상류 공장’이라는 항상 태생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새삼 ‘개발과 환경의 대립’이 여기서도 심각해졌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안동댐 부근에서 죽은 왜가리는 중금속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소나무도 말라 죽은 직접적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들었다. 일단 다행이라고 한시름 놓았지만 제련소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과연 해결책은 무엇일까. 제련소의 구체적인 환경 정화 노력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고 소나무와 왜가리를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기자 시절의 본능이 살아나면서 좀 더 취재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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