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베트남 말에도 우리말처럼 한자어가 들어 있다. 비엣남(越南) 하노이(河內) 통킹(東京) 등 지명은 말할 것도 없고 투띡(主席) 반묘(文廟) 콕두감(國子監) 관또이(軍隊) 등 관직명, 명사 등이 그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처음 들으면 잘 모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한자어를 추측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아시아 국가 중에 중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화교국인 싱가포르를 빼고는 우리나라와 베트남, 일본일 것이다.

지리적으론 멀리 떨어져 있지만 베트남을 방문하면 관혼상제 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경상북도가 지난해 경주-이스탄불 문화엑스포에 이어 올해 11월 11일부터 12월 3일까지 장장 23일간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기획한 것은 역사적, 문화적인 면에서 당연하다.

이와 함께 6억3,400만명의 인구가 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의 50주년 정상회담도 같은 기간 열리고 있어 베트남이 국제적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한국 언론은 11일 개막에 앞서 호치민시의 중심가 응우엔후에 거리의 흥겨운 분위기를 전해 주었다.

건국의 아버지인 호찌민(胡志明) 동상이 서있는 양쪽 거리에 프랑스 식민시대 지어진 호치민시인민위원회(시청) 건물을 중심으로 오페라 하우스, 노트르담 성당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프랑스 파리 거리를 연상케 한다. 사실 이 거리는 2015년 베트남통일 40주년을 맞아 서울의 광화문광장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다고 한다.

때마침 베트남 중부의 다낭시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수석 등 세계 정상들이 모였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아세안 국가중 가장 큰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첫 문민대통령인 유노 요도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베트남을 방문했다.

▲ 지난 201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해외공연단 공연 모습/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제공

문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온 시진핑 주석과 머리를 맞대고 북한핵 문제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그리고 경제 문화교류 정상화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베트남이 국제적 이슈가 된 것은 1974년 통일 이후 최고인 것 같다. 통일 이후 하노이 정부의 사이공시 ‘정리작전’을 피해 수십만의 ‘보트피플’이 바다에서 난민으로 죽거나 구조되면서 한때 국제적 관심을 끌었다.

남베트남에서 출세했던 관료와 지식인, 공산정권을 적대하는 인사들을 재판도 거치지 않고 감옥에 보내고 지방으로 내쫒아 ‘정화작업’을 거쳤다. 통일정부는 사이공을 호찌민시로 개명했다.

베트남 통일이후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지군이 200만명에 달하는 국민을 죽이는 ‘킬링필드’를 만들자 베트남군은 76년 캄보디아를 침공해 헹삼린정권을 몰아내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의 실권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를 혼내주려고 78년 대포를 앞세워 베트남 국경을 침공해 중·베트남 국경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규 중공군이 베트남 민병대에 곤욕을 치루고 철수했다. 사실상 중국의 패배였다.

전쟁으로 점철된 베트남 역사에서 그들은 원나라, 프랑스, 미국, 중국군까지 강대국의 침략을 모두 격퇴했다고 자랑한다. 삼국지를 보면 제갈량(諸葛亮)이 지금의 윈난(雲南), 월남지역에 살던 남만(南蠻)족 수장인 맹획(猛獲)을 7번 잡았다가 놓아주었다고 해 ‘7종7금’(七縱七擒)이란 고사성어가 생겼다.

베트남은 이때부터 거의 1,000년간을 중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11세기에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하노이 인근에 독립 왕조를 세웠다. 베트남인들은 독립 100년이 못돼 지상에서 육군으로는 가장 강했다는 원(元)나라의 몽골기병대를 물리쳤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통일40년이 지난 지금 최고의 평화시대를 맞은 베트남의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10개국 정상들이 50주년 기념식에 다 몰려왔다.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된 아시아태평양국가의 정상회의도 열려 베트남이 아시아에서 태평양까지 아우르는 ‘평화 만들기’의 주역을 맡고 있다. 여기에 2,000년 역사적 교류를 기념한 호치민-경주 문화축제가 열리니 흥겨울 밖에.

▲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 개막식이 열리는 베트남 호찌민시 응후엔후에 거리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제공

후엔후에 거리 옆에 이번 엑스포의 주 전시장인 9.23공원이 있다. 75년 통일이전 월남의 수도였던 호찌민시의 전 이름인 ‘사이공역’이 있던 곳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시켜준다던 프랑스가 약속을 어기고 계속 눌러앉자 호찌민 주석이 1945년 9월 23일 프랑스를 향해 ‘조국항전의 날’로 선포하고 게릴라전을 벌인 날을 기념한 공원이다.

호찌민이 게릴라전을 이끌어 9년만인 1954년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부근 ‘디엔비엔푸’에 주둔하던 프랑스군을 포위해 무조건항복을 받아냈다.

TV 화면을 보니 이 공원 곳곳과 인접한 도로 양쪽의 가로수를 따라 엑스포 홍보 배너가 촘촘하게 걸렸다. 개막일 저녁 호찌민 오페라하우스 무대에는 역사적인 작품이 올랐다. 13세기에 망한 베트남 레이(黎) 왕조의 마지막 왕자 리롱뜨엉(Ly Long Tuong·이용상)이 배를 타고 고려국으로 건너와 우리 화산이씨(華山李氏)의 시조가 됐다는 한국과 베트남의 인연 이야기를 담고 있다.

11일 러시아와 캄보디아 공연단을 필두로 슬로바키아, 중국 닝샤(寧夏)공연단 등 13개국의 15개 팀이 세계민속공연에 참가했다. 호찌민 시립미술관에서는 ‘한-베 미술교류전’이 열려 회화, 공예, 민화, 자수, 누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한국과 베트남을 대표하는 작가 250여명의 작품 350여점이 전시됐다고 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1일(현지시간) 오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의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다낭=뉴시스

베트남 결혼이민여성 35명으로 구성된 다문화 통역홍보 서포터즈단이 현지의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두 나라는 60~70년대 베트남 파병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시대를 거쳤다. 90년대 이후 한국기업들의 베트남진출, 베트남 노동자들의 국내취업과 ‘베트남 며느리’로 불리는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이제 두 나라는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인 공감을 넘어 살을 맞대고 피를 섞고 있다. 이번 엑스포가 두 나라가 손잡고 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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