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벤처 붐이여 다시 한번‘

▲ 최성범 주필

정부가 혁신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벤처투자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재정과 정책 금융을 통해 모험 자본 공급을 확대하고, 스톡옵션 비과세제도를 부활하는 등 벤처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도 늘리는 동시에 벤처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도 완화한다는 게 이달초 정부가 발표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의 골자다. 이를 위해 앞으로 3년간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신규로 조성하는 동시에 정책 금융기관 보증을 활용한 20조원의 연계자금을 지원한다는 게 구체적인 방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만으론 한계를 인식하고 혁신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선언을 한 이후 나온 구체적인 정책 성과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6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소득주도 성장이 수요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라면 공급 측면에서 성장을 이끄는 전략이 혁신 성장"이라며 "혁신 성장은 소득주도 성장 전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혁신 성장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필요한 △혁신 생태계 조성 △혁신 거점 구축 △규제 재설계 △혁신 인프라 강화 등 4대 분야별 추진 전략 가운데 이번에 혁신 생태계 조성에 관한 첫 번째 청사진이 제시된 셈이다. 정부가 2일 발표한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은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을 일으킨 이후 침체된 창업 생태계에 다시 한 번 활력을 불어넣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창업 환경을 지표화한 '창업 생태계 가치'는 서울이 24억 달러로, 실리콘밸리(2640억 달러)의 100분의 1, 베이징(1310억 달러)의 50분의 1에 불과한 만큼 창업생태계 조성이 절실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책으로 과연 2000~2001년의 벤처붐이 조성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일시적으로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벤처 붐이 생기기엔 2% 부족이라는 느낌이다. 주변 여건이 당시와는 판이한 데다 정부의 대책 자체도 과감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선 시대상황이 다르다. 2000년 당시엔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이 급성정하기 시작한 이른바 닷컴의 시대였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이 통신법을 개정한 이후 인터넷과 통신산업이 주도하는 이른바 정보화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당시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IoT(사물인터넷), 4차산업혁명 등의 용어는 등장하기도 전이었고 인공지능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소재였던 걸 감안하면 알 수 있다. 정보화 혁명이 본격 시작돼 대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판이하다. 물론 빅데이터, 인공지능, 무인자동차, 전기자동차, 핀테크, 드론 등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계속 등장하고는 있지만 그 잠재력이 ICT 산업의 빅뱅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가 오늘날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게 당시에 ICT산업에 집중 투자한 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미래 먹거리가 될 만한 성장 엔진을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 문재인 정부의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창업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네 번째)이 지난 2일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게다가 사회적 관심도 과거와는 다르다. 2000년 벤처붐 당시 대한민국은 연간 3500개가 넘는 벤처 창업이 이뤄져 미국을 제외하면 벤처창업이 가장 활발한 나라에 속했다. 그러나 벤처붐이 꺼지면서 한 때 만들어졌던 벤처 생태계는 완전하게 황폐화되고 말았다.

혁신창업의 중심은 정부가 아닌 시장이 돼야…코스닥 활성화대책 보완 시급

특히 코스닥이 창업기업들에겐 코스닥이라는 강력한 회수(exit) 시장이 존재했지만 코스닥 시장은 현재 거래소에 합병되고 나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엔 코스닥 등록이 쉬운 편이어서 창업 초기 투자가 다시 창업기업에 재투자될 수 있었지만 현 시점에선 이걸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창업기업들로선 유일한 회수시장이 인수 및 합병(M&A) 시장이지만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지원정책이 과거에 비해선 세련된 것이 사실이지만 벤처붐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라는 느낌이다. 사라진 생태계를 부활시킬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이라기보다는 과거의 벤처 거품이 재발할 것이란 우려가 앞선 나머지 과감히 부족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과감하게 스톡옵션 비과세 제도를 부활했다고 하지만 2000년 당시엔 특례범위가 5000만원이었던 데 비해 이번엔 한도가 2000만 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게 전형적인 예. 박근혜 정부 시절에서 한 발짝 더 나간 정도라는 느낌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돈을 퍼 붓는 식의 벤처투자 지원 정책으로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돈을 푸는 방식으로는 창업기업들이 정부 자금만 바라보는 나쁜 습관을 기르게 돼 ‘창업진흥원 공화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자칫하면 자산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기업 가격만 올라 실제 투자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경영 및 창업 컨설턴트 회사인 KSP의 강영재 대표는 “정부가 기획하고 심사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파이프(pipe) 관점의 정책에서 벗어나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자생적으로 상호 보완하면서 가치를 창출하고 성장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플랫폼(platform) 중심의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역할의 중심이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점에서 코스닥 시장 활성화 대책을 시급하게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판로 개척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