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정과제와 지난 대선의 공통공약, 안보 문제에 대해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특별히 부탁드린다”고 밝히며, 내년도 예산안 및 개혁입법 처리에 야당들이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30여분간 행한 취임 후 두번째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429조원이다. 올해보다 7.1% 증가한 수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며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편성한 예산이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은 ‘일자리’, ‘가계소득 증대’, ‘혁신성장’, ‘국민안전과 안보’에 중점을 두었다”며 “한 사람의 국민이 대한민국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방예산, 안전예산, 일자리예산, 아동수당, 창업예산 등이 씨줄 날줄로 엮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정부안의 통과를 요청했다.

◇ 문 대통령, 예산안 429조원 통과 요청…개헌 로드맵 제시

문 대통령은 개혁입법에 대해 “경제와 사회가 따로일 수 없다. 경제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불공정과 특권의 구조를 바꾸겠다”며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나 관행에 좌절하지 않도록, 국민 누구라도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바꿔나가겠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적폐청산”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개헌과 함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도 여야 합의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며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헌에 대한 의지와 함께 로드맵을 제시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8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뉴시스

문 대통령은 “개헌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로,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개헌은 내용에 있어서도, 과정에 있어서도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어야 한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헌의)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회에서 일정을 헤아려 개헌을 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 여당 ‘정치력 빈곤’, 야당 ‘반대 위한 반대’ 위기 국면

문제는 향후 국회 내 의회정치가 문 대통령의 요청과 기대치에 호응하며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석이 121석에 불과해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통과시킬 과반수 의석, 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선진화법상의 180석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추미애 당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야당을 강력하게 질타하고 공격하는 의정활동을 반복하면서, 야당을 국회내로 끌어들여 국정을 돕는 정치력을 발휘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주요 현안에 대해 국민의당이 도와주고, 법안 제정 및 개정에 대해서는 바른정당까지 협력해줘야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텐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국민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는 정책이나 각종 국정 현안마다 비판적이고, 바른정당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데다 자유한국당과의 합당 여부를 놓고 분열을 거듭하면서 당이 통합파와 자강파로 깨지기 일보직전에 놓여있다.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부패한 재벌과 기득권층에 대한 개혁을 가로막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마다 거의 막말에 가까운 비난과 발목잡기를 통해 보수층의 단결을 촉구하며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보수진영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시정연설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대해 “내년도 예산안 및 당면한 과제 해결을 위해 국민과 야당을 상대로 매우 정중하고 설득력 있게 호소를 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벌써 세 번째로 그만큼 국회를 존중하고 협치를 위한 대통령의 노력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보수야당의 입장은 싸늘한 비판 일색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20년 전으로 돌아가 시작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는 현재도, 미래도 없이 과거의 흔적 쫓기만 가득할 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나열하기에 바빴던 ‘사람 중심 경제,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대한민국 안보 원칙, 불공정과 특권이 사라진 사회를 위한 권력구조 개혁 등’에는 그 어떤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고 공세를 펼쳤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018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 동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영방송 장악 음모 밝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일어나 있다./뉴시스

역시 보수 야당인 바른정당은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안보' '성장' '통합'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3무(無) 시정연설이었다”며 “과거에 대한 해석은 자의적이었고, 현실에 대한 인식은 추상적이었고, 미래에 대해서는 모호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제2야당인 국민의당은 “국회와의 소통을 위한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모두 정답이고, 촛불혁명을 이끈 국민의 뜻이라는 인식은 우려스럽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흥진호 나포, 한중·한일 외교, 방송장악, 에너지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 등 현재 국민의 최대 관심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언급이 없어 아쉽다"고 지적해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 대결의 정치 벗어나 ‘협상과 상생의 협치’ 이뤄야

의회정치는 국회 내에서 여당이 먼저 손을 내밀고, 야당에게 협력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고 체면을 세워주는 ‘협치’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촛불민심에 호응하는 소통과 탈(脫)권위의 행보로 인해 70%대를 넘나들 정도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법안 하나 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정치력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다.

집권 6개월이 되도록 내각 진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일부 후보자의 낙마에 이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인 홍종학 전 의원도 자신의 경제 철학과 다른 행보로 야권의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뉴시스 자료사진 합성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등 스트롱맨 지도자들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가주의적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위협하며 거센 풍파와 혼돈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행정부는 정교하고 꼼꼼한 정책과 예산 추진을 통해 국민의 편에서 집행력과 현실성을 높여야 하며,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협상의 미학을 발휘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국정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유능하고 지혜로운 정치력을 발휘할 때만이 정치 및 행정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 역시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과거의 적폐범죄를 청산하고 시민들이 행복할 수 있는 민생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을 포함한 적폐와 범죄를 옹호하고, 기득권이나 재벌을 대변하는 부당한 관행에 안주해서는 합리적이고 열린 보수의 부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지향한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반대를 위한 반대’나 ‘묻지마 반대’는 도리어 국민들의 비판과 질타로 연결되어 정치적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여야가 상생과 협력, 협상과 배려의 정치를 통해 국민이 행복하고 민주주의와 정의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재창조하길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경제부 정치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로 YTN 등에서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MBA(기업경영)를 취득했고, 리더십과 협상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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