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편의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전후’라 부른 다음 그 이전을 근대 그 이후를 현대라 구분해 보자. 이제 소개하는 김호기 교수의 서평집 ‘세상을 뒤흔든 사상’은 전후를 기점 삼아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고자 했던 주요 사상가들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 김선태 편집위원

근대적 사유를 근저에서 전복시키며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것으로 평가되는 40권의 고전들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을 몇 마디로 요약하고 평가하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단편적 이해라 비난받을 확률이 높다. 다만 그 사상의 핵심을 슬쩍 짚어본 뒤 책을 펼쳐 들면 주제를 파악하느라 부질 없이 헤맬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책의 요약과 평가에 기대는 일은 그만큼 위험도 크지만 또 그만큼 덕도 볼 수 있는데,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크게 문학과 역사, 철학과 자연과학, 정치와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 여성 환경 등의 분야로 나뉜다. 그중 몇몇은 다시 여러 분야를 아우르며 가치론적 관점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통합해 살필 수 있다. 그들을 모아 거의 저자의 기술만 가지고 아래처럼 재구성해 본다. 독자들이 이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들 고전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얻는다면 그만큼 현대 사회가 제기하는 주요한 문제의식에 접근한 것이리라.

‘차별의 부정’과 열린 사유의 지평

전후 서구 사상사에서 가장 문제적 철학자로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해체란 말이 함의하듯 그는 기존 사유에 도전하고 그 논리를 전복함으로써 뜨거운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 『세상을 뒤흔든 사상 』 = 김호기. 메디치미디어. 2017년 09월 30일. 368쪽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 형이상학을 관통하는 것은 음성언어와 문자언어 간 이분법의 위계질서다. 로고스 중심주의라 부를 만한 이 질서가 역사상 부당하게 이뤄진 억압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작동해 왔다는 게 그의 통찰이다.

탈구축은 이러한 폭력적 위계를 ‘해체’하는 것을 말한다. 외부로부터의 파괴가 아닌, 내부에서 그 위계질서를 전도시키고 열등한 것들을 옹호하는. ‘그라마톨로지’에 나타난 그의 문자학은 로고스 중심주의에 맞서 서양 형이상학 전통을 재구축하려는 시도였다.

데리다는 인간의식 내부와 사회구조에 존재하는 이분법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사유의 틀(프레임)을 선사했다. 그가 제시하는 통찰은 인간 존재와 그 존재들이 구성한 사회가 선 자리를 돌아보게 만들고, 인문·사회과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행위가 아닌 구조가 사회와 문화를 재생산시킨다는 점을 확인시키면서 전후 사회와 문화 연구에서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여기서 구조란 변화하지 않는 법칙·원리·틀을 말한다. ‘야생의 사고’는 구조주의자로서 레비-스트로스의 독창적인 문명론과 사회사상이 담긴 저작이다.

아마존 열대우림 부족처럼 문명을 등진 인류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레비-스트로스는 미개의 사고가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은 야생의 사고라고 주장했다. “야생의 사고는 우리들의 사고와 같은 의미에서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논리적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서구 중심주의적 사유를 해체하는 중요한 사상적 거점을 제공했다. 그가 겨냥한 것이 문화와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인간과학의 확립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성과 ‘부의 불평등’

전후 시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정치적 사건으로 (프랑스에서 촉발되어 서구를 뒤흔든) 68혁명과 1989년 동구 사회주의 몰락을 들 수 있다. 68혁명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내재한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를 요구했다면, 동구 사회주의 몰락은 자본주의에 맞서온 현실 사회주의 기획의 실패를 함의했다.

미국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68혁명의 사상적 적자라 할 만하다. 마르크스와 베버로 대표되는 고전 사회학에서는 계급 또는 집단, 국민국가가 일차적인 분석 단위였다. 이런 이론적 가정에 맞서 월러스틴은 주권국가나 민족사회가 아닌 세계체제가 사회과학의 분석 단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 피처버그 동물원의 고릴라 가족. 고릴라의 어머니라 불리는 다이앤 포시가 돌보던 고릴라 므리시(Mrithi) 무리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포시는 1967년 아프리카 르완다에 도착한 이래 이 멸종 위기의 유인원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다 불행한 운명을 맞았다. 이후 고릴라는 인간의 ‘근대적 지배욕’이 초래한 자연 파괴의 상징적 존재로 부상했다.

세계체제론의 메시지에서 주목할 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회체제의 하나라는 점이다. 여기서 ‘역사적’이란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탄생﹒·확장·종말이라는 생애주기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근대 세계체제 1’에서 월러스틴은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발전하며 모순이 격화되어 위기를 일으킴으로써, 결국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이라 전망했다.

“201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 부의 불평등은 역사적 최고치를 회복하거나 심지어 이를 넘어서는 수준에 다다랐다.”오늘날 불평등은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시련이다. ‘21세기 자본’에서 이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일을 치밀하게, 그리고 설득력 높게 수행하여 사회과학의 화두로 부각시킨 이가 토마 피케티다.

피케티의 논리는 간단하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다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게 되고, 그 결과 소득분배가 더욱 불평등해진다는 게 그것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을 앞서 왔고, 그 결과 불평등은 점점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그는 누진적 소득세 개혁과 글로벌 자본세 도입 등을 제시한다. 특히 글로벌 자본세는 자본의 세계화 경향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다시, 사유의 중요성과 ‘인간의 가치’

각도를 달리 하여 ‘인간의 조건’에서 한나 아렌트는 근대 서구의 사고를 지배하는 ‘공·사의 이분법 해체’를 우려했다.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은 다른 활동들을 압도하고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근대의 과정은 지구로부터 탈출하고 세계로부터 도피하려는 이중적 의미의 ‘세계 소외’를 가져 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행위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유의미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초로 아렌트는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악의 근원임을 주장하면서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이후 자신이 발전시킨 철학적 인간학과 정치학으로 인해 아렌트는 전후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글머리에 ‘전후’를 편의적으로 사용했다고 썼는데 저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음은 저자의 말이다.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와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자리잡았다. 이후의 시대는 흔히 ‘전후(postwar)’라고 불린다. 전후의 사회 원리와 제도를 분석하고, 이 사회적 구속 아래 놓인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 현대 사상, 다시 말해 현대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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