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봉사활동하러 모처럼 외출했다. 코로나 시대라고 아기를 덜 낳을 리 없건만 – 열 달 정도 지나면 지금도 형편 없는 출산율이 더 낮아질지 모르지만 - 맡겨지는 신생아가 급감했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두어 주 전엔 사나흘 째 아기가 한 명도 없는, 그 곳 생기고 처음 보는 일도 있었다.

후두암 걸려 죽은 어느 외국 여성 가수 얘기를 읽고서는 한동안 내 목이 이상했고 누가 유방암 걸렸다 그러면 갑자기 멍울이 만져지는 것 같은 나로서는 요즘 몸 상태는 항상 별로다. 암시에 약한 존재여.

무증상 전파자가 되는 시나리오는 얼마나 두려운가. 1회용이 아니라 4-5회용이 된 마스크에서 나는 오징어 냄새가 싫지 않아진 것은 그게 내 입 냄새임을 홀연히 깨달아서가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증상 중 하나가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이라고 들어서다. 오 냄새여 향기로운 구취여.

체온계는 또 얼마나 보배로운 문물인가. 잔기침이 이어져도 콧물이 흘러도 발이 시려도, 카페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새끼들을 자가격리시켜 버릴까 고민스러울 때도 항상 그것은 소집된다. 그것이 표시하는 숫자는 신탁이다. 36.4에서 36.7을 오가는 수치는 아주 정확한 안도를 준다. 가끔 35.2라는 죽음의 신탁도 주시지만 반대방향으로의 오작동은 없으니 신통할밖에.

사정이 이러하니 봉사 가기 전 날은 고뇌에 빠진다. 신생아 감염 가능성이 운위되고 전국 어디서든 아기가 올 수 있으니 이 상황이 걱정되시면 봉사를 당분간 쉬셔도 된다고, 게시판에 어여쁘게 쓰여 있던데 나는 또 겁쟁이 노릇은 싫어 꿋꿋하게 간다. 가기는 가는데 항상 고민한다.

▲ 서울 서대문구청 직원들이 주말인 4일 안산(鞍山) 연희숲속쉼터 부근에서 산책 나온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내하고 있다. (사진=서대문구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중인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프면 사나흘 쉬라는데 나 좀 아픈 듯? 아기가 별로 없으니 쉬셔도 된다는 문자에 환호한다. 그리고 매 주 그 문자를 기대한다. 누가 봉사활동 안하면 안 된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이 무슨 모순된 심정일꼬.

한 주 거르고 가니 모처럼 아기들이 많다. 상근자들은 딴 일이 밀렸는지 내게 척 맡긴다. 6명을 혼자 돌보니 한 달 좀 넘은 위탁아를 열 살 큰 애 취급하며 울리고 신생아 순으로 손이 간다. 미안해 **야 다음 주에 다른 아기들 없을 때 물고 빨고 해 주마.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회차 지점에서 타니 자리를 고를 수 있다. 운전석 근처 앞 쪽은 타는 이가 모두 지나치니 안 좋다. 중간 지점도 내리는 이가 한 차례씩 머무니 좋지 않다. 만인이 선호하는 자리, 맨 뒷 줄의 앞 줄 창가에 앉는다.

무려 우이동에서 관악구 당곡사거리를 오가는 153번 버스는 헐크 바지처럼 승객을 태웠다 토해냈다를 반복한다. 여남은 명으로 출발해 보라매병원 앞에서 엄청 태우더니 다음 신대방역에서 거의 다 토해낸다. 다시 국회의사당 역에서 엄청 태우더니 광흥창 역에서 또 엄청 내려 논다.

국회의사당 역에서는 신도림역의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타는 문 내리는 문 구분 없이 꽉꽉 탄다. 일기예보를 챙겨 안 춥게 잘 차려입은 이삼십대 화이트 컬러들이 우아하게 밀집한다. 버스는 부풀어 오른 풍선이 되어 한강을 건넌다.

모두 마스크를 썼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밀치고 어쩌고 하는 몸짓조차 정지해 있다. 자기 몸이 차지한 작은 공간에 조용히 붙박혀 있다. 꽉 찬 고요함이 벅찬가, 내내 꺼져 있던 라디오가 언제부턴가 켜졌다. CBS FM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 방역업체 직원이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보육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역을 하고 있다./뉴시스

기분에 따라 청승맞고 징글징글하다가 정겹다가 하는 그 목소리. 그리고 흘러나오는 더 리얼 밴드의 Big Bad World. 낭창낭창 반복되는 가사,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rld” 가 승객들의 머리 위를 떠다닌다. 무심코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다 흠칫 멈춘다.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맑고 한강물은 표표히 흐른다. 강가에 늘어선 고층빌딩이 낮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이 무슨 정수라 스런 그림인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차갑게 들이친다. 옷섶을 단단히 여밀 뿐 창문은 닫지 않는다. 누군가 잔기침을 한다. 잔잔한 파문조차 일지 않는다. 당사자만 당황할 뿐.

누가 이 거대한 나쁜 세상을 두려워하랴. 뱀을 밟아도 스테이크를 먹어도 문을 열어도 좀 즐겨도 감기 걸려도(!) 숨을 들이 마셔도(!!) 걸려온 전화를 받아도 자기 생각을 말해도, 그것은 너를 죽일 수 있다. 안에 머물러야겠지, 안전하게 조심조심, 납작 엎드려야겠지.

겁쟁이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고, 겁쟁이가 되어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할까 두려워서도 아니고 여하간 우리는 지금 바깥에 있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버스 한 구간 동안 말도 안 되게 거리를 좁혀서, 되도록 덜 겹쳐지게 각자 몸을 웅크려.

▲ 5일 오후 서울 지하철에서 한 승객이 일회용 위생 장갑을 착용하고 손잡이를 잡고 있다./뉴시스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아닌 나는, 내일은 이 버스를 안 타는 나는, 어쩌다 끼어들어 편하게 앉아 가는 구경꾼 나는, 음악과 날씨와 시절이 만들어 낸 그 독특한 분위기, 그 풍경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뭉클함에 빠진다. 눈물을 참지 그러니 신파는 나의 적인데.

다리를 건너 몇 명이나 내리나 세 본다. 대여섯 명까지 열심히 헤아리다 혼돈에 빠진다. 이런 앞 문에서도 내리는군. 두 줄로 마구 쏟아져 내리니 감당이 안 되잖아. 대강 50명 넘는 듯. 그들은 집에 다 온 걸까? 다시 전철을 타러 가려나? 모두들 모쪼록 무사하길.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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