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미국이 두 번째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를 탈퇴한다. 유네스코는 지난 10월 12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탈퇴를 선언하면서 위기를 맡게 됐다.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84년 이후 두 번째다.

▲ 남영진 논설고문

당시 미국 행정부는 유네스코의 정치적 편향성과 방만한 운영 등을 문제 삼아 유네스코를 탈퇴한바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탈퇴로 유네스코의 정회원국은 193개국으로 줄었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18년 만에 재가입했다.

미국은 지난 13일 오드리 아줄레이(45)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출되기 바로 직전인 12일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현 사무총장에게 탈퇴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이번 결정은 유네스코의 체납금 증가, 유네스코 조직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 유네스코의 계속되는 반 이스라엘 편견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유네스코의 최대 후원국이어서 유네스코 운영에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국으로 평화를 내세워 미국에 이어 두번째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다.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한 싸움에서 교육과 문화 교류에 대한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미국이 이 문제를 주도하는 우리 기구를 탈퇴하는 것은 깊이 유감스럽다”며 "유네스코는 중대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는 다자주의와 보편적 가치를 믿기 때문에 유네스코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유엔 산하 최대의 전문기구로 교육, 과학, 문화 등 지적 활동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인류 발전을 증진시키기 위해 1945년 11월 세계 37개국이 모여 창설됐다.

▲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지난 8월 13일 일본 서남 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기증받은 군함도의 모습. 일본 내 강제동원 연구자로 유명한 하야시 에이다이씨가 수집한 기록물이다./국가기록원=뉴시스 제공

1946년 11월 4일 20개국의 비준을 얻어 유네스코 헌장이 발효됐으며 제1차 유네스코 총회가 1946년 11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됐다. 그래서 정치적 입장이 강한 유엔은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문화·교육기구인 유네스코는 파리에 본부가 있다.

비정치적 분야에서 국제이해와 협력을 모색해온 유네스코는 각 국가의 국가위원회가 회원자격을 갖는다. 우리나라도 서울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교육부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을 맡는다.

외교부 차관, 과학기술처 차관은 당연직 부위원장이다. 국회에서 각 당별로 위원들을 추천하고 교수, 언론계에서도 위원들을 추천한다. 유네스코는 1950년대에는 세계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인쇄시설을 빌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전국에 보급했다.

▲ 오드리 아줄레이 차기 유네스코 사무총장【파리=AP/뉴시스 자료사진】

유네스코는 60년대 프랑스 그로노블 청년대회를 계기로 청소년 교육과 국제이해 교육, 70년대에는 AP UPI AFP 로이터 등 미국 영국 프랑스 등 4대 통신사들이 좌지우지해오던 서방 위주의 정보독점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신정보질서 운동에 집중했다. 80년대에는 이 정보 질서를 넘어 부의 선진국 집중을 완화하고 자유로운 무역, 유통을 위한 신경제질서 확립에 매진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문화유산 지정작업이 본격화되면서 각국이 상반된 역사 해석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이게 되면서 반목을 거듭해온 ‘문화외교의 전쟁터’가 됐다. 갈등의 축으로 부상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자연유산, 문화유산, 기록유산 등 3개 부문)은 현재까지 1073개가 등재돼 있다. 자연유산에 관해서는 국가 간 이견이 별로 없지만, 문화유산에서는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문제도 막후 외교전이 치열하다. 한·중·일 포함 8개국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제연대위원회가 지난해 유네스코에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위안부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 일본도 유네스코를 탈퇴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영화로도 나온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노역의 한이 서린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한·일 간의 입장이 뚜렷이 갈렸다.

또한 유네스코는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목으로 시끄러웠다. 유네스코는 작년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에도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과 유대교 공동성지 관리 문제에서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 7월엔 요르단 강 서안 헤브론 구시가지를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 유산으로 등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탈퇴한 이유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나는 졸업 후 국제공무원이 되고자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공채로 입사했다. 대학 때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한 경력으로 유네스코청년원에 유네스코학생협회(KUSA)를 지도하는 유네스코청년원 간사를 맡아 2년간 활동했다.

▲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7 서울아리랑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풍물놀이와 강강술래 등 전통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번 축제는 서울시와 서울아리랑페스티벌조직위원회가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했다./뉴시스

80년 5·18광주항쟁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5공화국의 고 이규호 교육부 장관이 대학생 의식화교육을 강행하면서 마찰을 빚게 됐다. 결국 유네스코를 그만두고 한국일보 공채시험을 거쳐 언론계로 직장을 옮겼다. 문화 교육 과학이 정치적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체험했다. 세계문화유산이 각국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지정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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