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프랑스 파리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 새겨 넣은 한 마리 파리 그림이 화장실의 청결도를 높여 유지비를 줄여준다.

▲ 김선태 편집위원

이 참신하고도 효과만점인 발상을 현대 행동경제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회자시킨 인물이 리처드 탈러 현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다.

‘웃기는 경제학자’로 불러도 좋을, 실제로 대화중에 위트와 농담을 잊지 않는 탈러 교수가 이번에 제대로 사고를 쳤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이 상은 기존 노벨상과 달리 1968년 제정된 것으로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지만, 어쨌거나 다들 노벨 경제학상이라 부른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10월 9일(현지시간) 이 소식을 전하며 탈러 교수에 대해 “제한된 합리성과 사회적 선호 및 자제력의 결여가 개인의 결정과 시장의 결과에 어떤 구조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경제적 의사 결정의 분석에 실질적인 심리학적 가정을 도입했다”고 평가한다. 인간 행동에는 모름지기 ‘약간 모자란 면’이 있으며 ‘눈치 봐가며 판단하기’를 빼놓을 수 없고 ‘자칫 잃기 쉬운 자제력'이 일상의 경제활동을 지배한다는 주장 쯤 되겠다.

‘넛지’의 스타에서 행동경제학의 대부로

탈러는 이런 가정 아래 개인과 사회의 경제적 선택과 그 영향을 합리적으로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하려 했고, 내친 김에 이를 주류 경제학과 맞장 뜰 이론 체계로 발전시켰으니 이름 하여 행동경제학이다. 2008년에 발표한 ‘넛지’는 이론인지 아이디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포스트 모더닉한 발상, 그러면서도 강력한 체계를 지닌 서술로 독자를 매료시키면서 기존 경제학의 아성을 뒤흔들었다.

사실 ‘넛지’ 원고는 세상에 빛을 보기 전, 다소 지나치다 싶은 철학과 개념을 담았다는 이유로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넛지’라는 말은 정책 결정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방식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캐시 선 스타인을 미 정보규제국 국장으로 불러들였으니 현실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넛지’ 책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가 다름 아닌 한국이다.

▲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 결정적 1%, 사소하지만 치명적 허점을 공략하라』 = 리처드 탈러. 리더스북. 628쪽.

2015년 탈러 교수는 다소 의젓해진 논조로 자신의 이론을 한층 다듬어,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좀 더 온전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원제는 Misbehaving – The Making of Behavioural Economics)을 펴냈다.

책은 기존 경제학의 전제를 의심하는 데서 시작한다. 일반 경제학 이론은 사람들이 이성적이며 감정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 가정하는데, 저자는 이런 존재를 호모 이코노미쿠스, 줄여서 ‘이콘’이라 부른다. 하지만 실재하는 인간은 대단히 많은 허점을 지닌 예측불허의 존재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 하나를 보자.

- 내 친구 마야 바힐렐은 더블침대용 커버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마침 그게 세일 중이었다. 정상가는 킹 사이즈가 300달러였고, 퀸 사이즈는 250달러, 더블은 200달러였다. 그런데 이번 주만 사이즈에 관계없이 모두 150달러에 판매하고 있었다. 마야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만 킹 사이즈 커버를 사고 말았다.(이 책 111쪽)

청소년도 아는 ‘기회비용’ 개념을 무시한 채 단지 정상가가 더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킹 사이즈 커버를 산 그 마야가 유명한 심리학자라는 사실이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쉽게 유혹의 함정에 빠지다니. 이 사례처럼 인간은 누구나 결정적 순간에 비이성적인 행동에 이끌리곤 한다면서 저자는 “이콘들만 살아가는 가상 세계는 더 이상 존립 근거가 없다”고 단언한다.

누구나 결정적일 때 엉뚱하게 행동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의 강점 중 하나는 인간의 불완전한 특성을 기반으로 전통 경제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방식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집안의 대소사에서 비즈니스, 공공정책에 이르기까지 그 적용 범위에도 제한이 없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행동경제학 발달사라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사례들로 넘쳐난다. ‘부의 한계 효용 체감 곡선’, ‘가치 함수’ 같은 그래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독자들은 여기저기서 낄낄대거나 무릎을 칠 것이다. 이 대목을 보자.

- 빈스는 인도어 시즌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실내 테니스 클럽에 1000달러의 회비를 내고 가입했다. 그러나 두 달 후에 테니스 엘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테니스를 하기가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래도 회비가 아까워 석 달 동안이나 고통을 참으며 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만두게 되었다.(이 책 123쪽)

기존 경제학에 따르면 ‘매몰비용’은 당연히 무시해야 하며, 정상적인 판단에 따른다면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며, 오히려 위의 경우처럼 그 반대로 행동한다. 거금을 주고 산 새 구두가 아까워 뒤꿈치가 까여도 벗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놈의 아깝다는 생각은 왜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떠올라 이성적인 선택을 방해하는지!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 1%의 허점이 똑똑한 사람으로 하여금 멍청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데, 그게 진짜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 선정된 리처드 탈러 현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사진=영국 채텀하우스)

저자라고 예외일 수 없을 터, 알고 보면 그도 ‘허당’ 끼가 다분하다. 탈러 교수에게 30년 묵은 빈티지 와인이 몇 병 있는데 경매에 내다 팔면 고가에 거래될 물건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특별한 날이 오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동하여 어쩔 수 없이 이놈들을 한 병씩 꺼내 마신다.

이 책에서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을 신통한 단기 처방전 정도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 시장경제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이론으로까지 확장하고자 시도한다. 그 결과 별개의 행동경제학은 사라질 것이라 낙관한다. 장차 모든 경제학 분야들이 충분할 정도로 행동주의적인 학문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소망 같은 전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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