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한가위 연휴 기간에도 한반도의 전쟁위험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 남영진 논설고문

북한을 방문했던 러시아 의원단이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인 오늘(10월 10일)을 전후해 다시 미사일을 발사할 거라는 예측을 전했다.

이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 상황을 '태풍전 고요‘(calm before storm)라고 모호하게 말해 북한이나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해설이 뒤따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일촉즉발 분위기의 북미 공방에 ‘코리아 패싱’이라고 비아냥을 듣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미국은 한국의 삼성, LG냉장고 대미 수출에 세이프가드를 적용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반도 안보위기를 부추기면서 경제적 실속까지 챙기겠다는 것인데, 트럼프의 발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단군이래 최장연휴’라는 10일간의 한가위 연휴 끝물인 지난 7일 전 세계 가톨릭 신도들은 ‘묵주기도의 동정마리아 기념일’에 전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1571년 10월 7일 교황청을 중심으로 베네치아 공화국 스페인 왕국 오스트리아 왕국 등의 연합해군이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인 레판토 만에서 오스만터키의 이슬람 함대를 물리쳤다. 이때의 승리를 가톨릭 교도들은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여기고 비오 5세 교황이 이 날을 ’승리의 성모축일‘이라 명명했다.

8세기 이슬람 세력이 중동에서부터 시작해 이집트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방의 베르베르족을 내세워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치고 올라갔다. 마침내 스페인과 프랑스국경인 피레네 산맥을 넘자 9세기 초 프랑크의 피핀 대제가 이를 막아내 서유럽의 이슬람화는 일단 저지됐다.

▲ 북한이 지난 7월 감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 시험발사 장면/뉴시스 자료사진

교황청은 이를 복수하기 위해 12세기부터 7차에 거쳐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내세워 십자군전쟁을 일으킨다. 결국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양 세력은 현상유지로 맞선다.

13세기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내려온 셀주크투르크가 이슬람 세력을 통합하고 이어 14세기부터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다시 서유럽으로 침략했다.

1453년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 성을 점령해 로마제국 2000년의 계승자인 동로마 제국인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의 아들 셀림 1세와 손자 술레이만 1세에 이르면서 발칸반도를 넘어 1521년에 베오그라드를 거쳐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유럽군에게 이겨 헝가리 제국을 멸망시켰다.

이슬람 세력은 로마 제국의 후예로 로마 교황이 임명하는 신성로마 제국의 육지 끝 영토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 빈에서 마주치게 된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헝가리 왕권까지 차지한 오스트리아 대공인 카를 5세의 본거지인 빈은 술레이만 1세의 대군을 맞아 농성전을 펼쳐 두 달간 버티자 투르크군은 결국 보급품이 떨어져 철수한다. 이를 제1차 빈공세라고 한다.

술레이만은 1532년 다시 공략에 나섰지만(2차 빈공세) 서부 헝가리의 요새 코즈베그에서 시간을 너무 끌어 겨울 추위 때문에 콘스탄티노플로 철수했다.

이 공방전에서 오스트리아 측은 수만명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죽었지만 이후 발칸 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권이 확고해지고 유럽을 이슬람 세력이 직접 위협하는 처지가 됐다.

이슬람 세력의 유럽 침공은 700년대 서남부 이베리아 반도에서 1699년 중유럽 빈에 대한 마지막 대공세까지 거의 1000년간 지속돼 서구 기독교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됐다.

▲ 레판토 해전/구글 이미지 캡처

해군이 약했던 투르크군은 기독교군에게 배워 지중해에서도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 오스트리아 카를 5세의 해군(에스파냐, 베네치아, 교황청 연합 함대)을 격파해 해상권마저 쥐게 된다.

1566년 술탄으로 즉위한 셀림 2세(Selim Ⅱ)는 드디어 1570년에 베네치아 소유령인 키프로스 섬을 공격했다. 키프로스는 베네치아가 약 100년을 지배해온 동지중해 기독교 세력의 보루였다.

베네치아는 로마와 스페인에 도움을 요청했다. 교황 비오 5세는 신성동맹(가톨릭 동맹)을 향해 크리스트교 세계를 구하자고 호소했지만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오랜 적대관계로 미온적이었다.

스페인 왕 필리페 2세는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으로서 베네치아의 쇠망을 은근히 바랐지만 키프로스의 상실은 곧 스페인의 지중해상 이권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에 우선 베네치아를 돕기로 결심한다.

1571년 5월 베네치아, 로마교황청, 스페인 3국은 스페인 왕의 이복동생인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Don Juan)을 사령관으로 하는 단일 함대를 편성했다.

그 후 여러 유럽국들도 개별적으로 선박과 승무원들을 파견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초월한 '십자군 함대'로 발전했고 8월 말 이탈리아 남단의 메시나에 집결, 9월 16일 출항했다. 당시 투르크 함대는 코린토스 만의 레판토에 집결해 있었다. 10월 7일 새벽에 시작한 전투는 오후 4시경에 기독교 측의 승리로 끝이 났다.

레판토 해전은 약 17만 명의 병력이 바다에서 격돌한 16세기 유럽의 최대 해전이었으며, 화력으로 승부가 결정 난 최초의 해전이었다.

양측 갤리 선은 모양과 기능이 비슷했지만 대포로 승리했다. 기독교 갤리 선은 뱃머리에 5문의 대포가, 약간 작은 투르크 갤리 선에는 3문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 연합함대에는 6척의 갈레아스 선에 30문씩의 대포가 있었다.

갈레아스 선은 갤리 선보다 2배나 커서 느리기는 하지만 많은 병력과 포를 운반했다. 기독교 병력들은 화승총으로 긴 활을 쏘는 투르크 예체베리병들을 쓰러뜨렸다.

20여년 후 임진, 정유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명량해전에서 거북선의 총통으로 왜선을 격침시킨 것과 비슷하다.

이후 400여년간 함포를 앞세운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미국, 일본 등은 전세계의 식민지를 개척했다. 독일은 대포와 화학무기로 1차대전을, 비행기와 로켓으로 2차대전을 일으켰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뉴시스 자료사진 합성

미국은 원자탄을 만들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에 승리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개발했다.

핵무기는 모두 죽는 ‘절멸’무기다. 한반도를 둘러싼 ‘말의 핵미사일’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아직도 400년 전과 같이 평화를 비는 묵주기도만 하고 있어야 하니 답답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전쟁만은 안된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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