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2011년 12월 대구에서 친구들의 왕따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초등, 여중생들의 살인, 폭력 사건이 두드러진다.

▲ 남영진 논설고문

인천에서 10대 소녀들이 공모해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사건의 두 범인 나이가 19세 17세다. 주범인 김모양이 자신에 대한 처벌이 5년에서 7년밖에 안될 거라며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니 ‘사이코패스’ 증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산에서 또래 친구들이 여중생의 옷을 벗기고 집단폭행해 피투성이가 된 사진이 SNS를 통해 전국으로 유포돼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겨우 중학교 2학년 아이를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의자와 소주병 칼 쇠파이프 등 여러가지 흉기로 때려 머리에 큰 구멍이 생겼는데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이라도 하듯 피해자를 무릎을 꿇리고 사진까지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언론에서는 중고생들의 일탈행동이 도를 넘었다며 소년법의 처벌강화를 주장하고 학교와 가정과 사회 모두가 이들의 인성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생긴 탓이라는 반성이 잇따랐다. 그러나 사실 국민들은 청소년 관련 사건이 잊혀질만하면 터져 문제가 큰 줄은 알지만 ‘자기 새끼’가 직접 피해를 입지 않으면 금방 잊는다.

언론에서 사건의 폭력성을 과대 보도하고 전문가들이 문제점과 대책을 주문하면 뒤늦게 정부가 재발방지와 예방대책을 내놓는 과정을 거치다가도 다른 사건이 터지면 또 잊혀 진다.

학교에서의 왕따, 정규교육을 일탈한 청소년 범죄와 학교내외의 폭력사건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다. 일본의 ‘이지메’(왕따)에서 건너왔다고 할 정도로 일본의 경우가 우리보다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전부터 많은 청소년 범죄가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매스컴을 통한 보도와 인터넷, SNS 등으로 빨리 전파되기 때문에 더 사회적 이슈가 됐을 것이다.

어른들이 끼어들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생기고 있는지 잘 모른다. 부모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교장과 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 지난달 1일 부산 사상구의 한 골목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폭행하고 있다./CCTV 캡처=뉴시스 제공

일차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부모의 문제가 크다. 가정에서 부모가 제 역할을 못해내고 학교, 사회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소년 범죄가 늘고 있다. 청소년들은 소년법의 형사처벌이 비교적 가볍다는 점을 비웃듯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에 2014년 12월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돼 2015년 7월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이 의무가 됐고 지난해 이 법의 시행령과 시행세칙이 제정됐다.

교육부에서는 올해부터 ‘5개년 종합계획’을 세워 각급 학교에서 이제 막 시행하려고 하는 때에 이런 엽기적인 사건들이 또 터진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인성교육의 내용을 잘 모른다. 요즘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4차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인성교육’이란 말의 실체가 뚜렷치 않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이 전통적으로 강조되는 유교식 충효교육인지 사회적 예절교육인지 분명치 않다. 2014년 말 국회에서 통과된 인성교육법에는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며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는데 ‘학습’만 빠진 일반 교육 목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즉 입시교육의 폐해를 줄이고 좀 주위도 돌아보라는 정도의 지침이다.

지난 9월 28일 서울 강남 프리마호텔에서 열린 ‘강남인성포럼’은 적시에 창립대회를 가졌다. 입시교육의 메카인 소위 ‘8학군’, 입시학원가가 밀집된 ‘사교육의 1번지’인 강남 학부모와 학계 관계자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인성교육의 전도사’라는 장길호 전 강남교육장과 지역의 각급학교장, 김성곤 전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우리의 주입식, 강의 위주 교육으로 인해 인성교육이 피폐되고 있어 양질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라는 창립취지를 밝혔다.

▲ 지난해 9월 서울 충무로 한국의 집에서 청소년들이 성균관 유생들의 '추석 차례상 차리기'를 시연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주요 사업은 인성교육 강사와 프로그램 개발, 교사와 학생 학부모 교육청 정부간의 소통, 각종 인성교육 정책 제안, 교사 학부모에 대한 인성교육 연수와 강좌 개최 등이다.

우선 10월 25일 삼성2동 주민센터에서 심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의 ‘성공을 위한 내 아이의 잠재능력,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요?’와 최영돈 고려대 명예교수의 ‘마음으로 하는 공부, 점화(點火)’라는 강좌를 진행한다,

교육1번지인 강남지역에서의 첫 발걸음이라 기대해본다.

그러나 돈이 된다면 남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배금주의’, 높은 사람들의 청문회에서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이 필수였을 정도로 만연한 대학서열화를 통한 ‘출세주의’, 그리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의 이기주의가 판치는 이 사회에서 청소년학생들에게 ‘인성’을 강조하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웃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윗물이 맑아야…’의 속담대로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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