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나라가 가난에 시달리느라, 그 후엔 정치군인들의 손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느라 유아교육까지 신경 쓸 힘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그 시절 유치원을 나왔다는 것은 부유함의 표시였고 ‘앗 죄송 제가 유치원을 검정고시로 나와서...’ 라는 농담도 있었다. 이제 살 만해지고 정치도 민주화되어 나라가 유아교육을 챙기게 되었으니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하룻밤 새 사립유치원 총파업 결정이 철회되었다 철회가 번복되었다 다시 입장을 뒤집고 또다시 뒤집는 꼴은 관계자들 사이에 막후 협의가 숨가쁘게 진행되는구나 하는 믿음직한 느낌보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뭔 난리들인가 싶다. 우격다짐으로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 찍어 돌리면 사회갈등이 해결되나.

나라가 유아교육을 책임지지 못한 시절 유치원은 부모든 배우자든 본인이든 좀 돈이 있는 집의 (대체로) 여자가 설립해 운영했다. 강남의 어떤 유치원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풍문도 심심치 않았고 영화인가 소설인가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사립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자기 애 이름을 올리는 극부유 극(極)극성 부모 얘기도 나온다.

그만큼 교육의 첫 단추, 유아 교육이 중요하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애를 좋은 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이 부모의 위세를 보여주는 지위재(goods of position)라는 소리일 수도 있다. 앞의 의미를 중시하며 뒤의 함축을 없애는 것이 유아교육이 나가야 할 바 아닐까 싶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모두 유아교육의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일보다 품위도 있고 수익도 쏠쏠하다는 사회적, 사업적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장 있는 곳에 머리도 있는 법이다. 기왕에 하는 일 잘 하려 애쓰고 훌륭하게 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대학원 다니며 교육철학도 갖추고 아동심리학도 공부하고 몬테소리니 뭐니 시절 따라 유행하는 교육이론도 들여다 보았을 터이다.

존경받고 싶은 욕망은 우리를 먹고 사는 존재에만 그치지 않게 고양시켜 주는 우리 모두가 가진 동력이다. 유치원 십 수개를 굴리며 애들 머릿 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배불뚝이 원장님은 극소수일 뿐 대부분의 원장들은 여섯 일곱 살 어린아이들이 배시시 웃으며 혹은 달려와 안기며 사랑을 표현하는 그런 원장님이 되고자 노력한다. 거기서 생계를 꾸리고 영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런 부분을 부정하면 좀 냉소적인 것 아닌가. 위선도 문제지만 위악도 문제다.

한유총 사태, 유아교육 공공성과 사립유치원 사유재산권 대립이 근본 원인

유아교육의 공공성이라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원칙과 ‘사립’유치원이라는 것에 함축된 사유재산권의 대립이 작금의 ‘한유총 사태’의 근간이다. 이런 사회적 갈등의 사안에 있어 국가는 이해당사자를 협의의 한 카운터파트로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유아 교육의 노하우를 구비한 전문가로도 대우하면 더 좋겠다. 국가가 미처 커버하지 못할 때 어떤 이유로든 유치원 교육에 몸 담은 이들에게 그동안 애썼다, 이제 나라가 나설테니 고급한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서서히 물러나라고 해야 한다.

▲ 최정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전국 지회장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휴업 철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그들을 부당한 기득권을 쥐고 아등바등하는 부패집단으로 몰며 일선 공무원들은 으르딱딱대고 정치인은 편파적인 여론몰이를 하면 어떻게 사회갈등의 합리적 해결을 기대하겠는가. 모든 사회갈등을 파워 게임으로 만들고 힘없는 쪽은 그저 힘없음을 한탄하게 만들어야 하는가.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밀려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가. 옳은 대의명분이라도 개인의 억울함을 최소화할 여유와 예의를 지켜야 한다.

피부에 가장 와 닿는 부조리한 정책은 국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의 차등 지원이다. 국공립에는 98만원을, 사립에는 29만원을 ‘유치원 단위’에 지원한다는 것이다. 한 푼 한 푼이 새삼스런 부모들에게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로또라는 말이 안 나오면 이상하다. 여섯 일곱 어린 아이들이 자기 엄마 아빠가 국공립유치원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실망하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며 느낄 좌절감이나 모종의 죄책감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그 어린 나이에 인생이 로또라는 체험을 하게 해야 하나.

나라의 정책을 세우고 실행할 때 그 정책의 대상, 잠재 수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 정책 대상은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다. 유치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유아교육의 당사자, 유아들의 부모에게 교육비를 차등없이 주면 된다. 돈을 주면 부모가 아이 교육에 쓰지 않고 엉뚱한 데 쓸까봐 걱정이라고? 정 걱정되면 돈이 아니라 유치원 다니는 데만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주면 된다. (책과 음반을 사서 홈스쿨링을 하겠다는 부모에 대한 차별은 차후 문제로 치자.)

그걸 가지고 학부모들이 유치원을 선택해 다니고 그러면서 선택받지 못한 사립유치원들은 나쁜 순서대로 서서히 도태될 것이다. 유치원, 국공립유치원 육성정책인가? 왜 돈을 유치원에게 주지? (관료들이 돈 주무르며 권력을 행사하려고 그런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그러니 사립유치원장들이 원아들 수 늘리려 혈안인 데다 (일부 그런 일이 있고 그건 부조리한 정책이 낳을 수 있는 예상가능한 결과 아닐까) 지금도 잘 벌어먹으면서 국민혈세까지 지원받겠다고 설친다는 오해가 난무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 유치원 육성이 아니라 유아교육의 공공성 제고가 정책 목표이다. 그것을 위해 열악했던 국공립 유치원을 좋게 만들고 국공립이 부족해 하는 수 없이 사립을 선택하는 일이 없게 국공립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모든 학부모에게 동일 가치의 바우처를 주자는 것이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총파업의 방식으로 관철하려 했던 ‘유아교육 평등권 및 사립유치원 생존권 보장’ 에서의 ‘평등’의 의미다. 딴지 걸 여지가 없는 솔루션이다.

국공립 유치원 짓는 비용으로 교사 처우개선에 써야

국공립의 수를 늘리며 사립의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옳다. 그러나 꼭 수십억을 들여 새 국공립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시설을 합리적 가격의 사용료를 물고 쓰면 된다. 무엇을 좋게 만들 때 관료들은 삐까번쩍한 새 건물을 짓는 것으로 시작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학부모에게 지원하는 무상교육비 늘려 나가고 유치원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써야 할 돈을 ‘토건 사업’에 쓰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물론 사립유치원 시설을 쓰면서 낼 사용료를 협상하는 일은 골치 아플 것이다. 양 쪽이 인내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 애들 수는 줄어드는 마당에 새 유치원 건물을 지어 대면 남아도는 사립유치원들은 사립 양로원으로 바꾸나, 때려 부수고 다른 건물 짓나. 일 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인가 모종의 리베이트가 물려 있기 때문인가. 유아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일로 보이는 것은 교사 처우 개선이다. 감시 카메라 달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제발 토건적 접근법을 버려 달라.

사족을 붙이자면 ‘...을 볼모로 삼은’이라는 상투어는 그만 썼으면 좋겠다. 지하철이 파업하면 시민들을 볼모로 한다고 하고 대기업이 파업하면 국민경제를 볼모로 한다는데 그 며칠 일상이 단절된다고 인질로 전락하지는 않는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강사를 그만 두고 다양하게 읽고 다니고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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