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카카오뱅크의 등장이 금융 생태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 최성범 주필

오랜 기간 현실에 안주해 보수적으로 운영해온 은행들로선 케이뱅크에 이은 카카오뱅크의 등장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카카오뱅크의 돌풍은 놀라울 정도다. 7월27일 문을 연 이후 한 달 만에 300만 명이 넘게 카카오뱅크에 가입했다.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 300만 명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은행 고객이 한 달 만에 300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금융계로선 엄청난 사건이다. 10만 계좌가 웬만한 시중은행의 반년 실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내방객 감소로 영업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은행들로선 엄청난 충격이다.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카카오뱅크는 지난 6일 자본금도 8000억원으로 확충했다. 이에 따라 영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경우 그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지고 제3, 제4의 인터넷 은행이 등장할 경우 단순한 입출금 업무와 소액 대출은 인터넷은행의 차지가 될 게 분명하다. 이는 IMF 위기 이후 안정된 경영환경 속에서 자족하던 금융권으로선 이제 생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은행권의 변화도 감지된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내리고, 수수료를 낮추며 애플리케이션(앱) 환경 개선에도 나섰다. 해외송금 수수료 인하 경쟁이 가장 대표적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ATM을 이용해 아시아 15개국에 송금 시 수수료를 1000원만 받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우리은행도 인터넷과 모바일을 이용한 해외송금 수수료를 연말까지 할인할 계획이다. 500달러 이하 해외 송금 수수료를 1만500원에서 2500원으로 낮췄다. 일종의 메기 효과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개선도 활발하다. NH농협은행은 모바일 뱅킹 앱인 ‘올원뱅크’ 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기존 8단계였던 회원 가입절차를 5단계로 줄였다. 신한은행은 공인인증서나 보안매체 비밀번호 없이 계좌조회, 이체, 출금 등이 가능한 S뱅크 간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은행들에 맞서 통신회사와의 합작에도 나서고 있다. 인터넷은행과 비슷한 서비스 구축을 통해 인터넷은행과 경쟁하겠다는 취지다.

하나은행 그룹의 경우 SK텔레콤과 합작해 ‘핀크(Finnq)’를 출시했다.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해 고객의 신용카드 거래 내역을 기반한 소비 패턴 분석과 함께 고객에게 자신의 소비패턴에 맞는 상품을 소개하고 자산관리까지 도와주는 금융 서비스다. 주요 서비스 중 하나인 ‘씨미(SEE ME)’의 경우 여러 금융사에 흩어진 계좌 내역은 물론 신용카드 거래 내역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돕는다. 서비스 내용이 인터넷 전문은행을 연상케 한다.

금융권 일각에선 핀크가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대비한 사전포석으로 본다. 핀크는 지난해 10월 하나금융과 SK텔레콤이 각각 51%, 49%의 비율로 출자한 합작 법인이다. 특히 SK텔레콤이 2015년 인터파크 컨소시엄으로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한 적이 있어 사실상 인터넷전문은행을 준비하는 경험 축적의 징검다리로 본다.

인터넷은행, 무풍지대 금융권에 지각변동 일으켜

사실상 무풍지대이던 금융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야할 방향은 분명하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도록 은행 업무를 바꾸는 일이다.

▲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등장이 금융 생태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출범 한 달 만에 3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유치해 은행권에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은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세빛섬에서 열린 카카오뱅크 출범 행사 장면. /뉴시스 자료사진

일단 지점수 축소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점수가 은행의 영업력 그 자체이던 시절은 지났기 때문이다. 씨티은행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금융거래는 2006년 14%에서 2016년 52%로 증가했지만, 점포를 통한 거래는 같은 기간 38%에서 5.5%로 급감했다고 한다. 국내 4대 대형은행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500여개 가까운 오프라인 지점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KB국민은행의 경우 2011년말 1165개에서 올해 3월말 현재 1062개, 우리은행의 경우 942개에서 892개, 신한은행은 970개에서 924개, KEB하나은행의 겨우 1009개에서 834개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점포 감축수는 올 상반기중에만 무려 263개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집 주변의 은행 점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씨티은행의 경우 전체 점포수의 80%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5년 동안 은행을 떠난 직원만도 7천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올 상반기중에만 은행원 수가 3517명 줄어들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0년엔 모바일과 인터넷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거래의 비중은 전체 은행 거래의 66%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탁업무나 예적금 가입 등 은행이 판매나 자문을 해 주는 서비스도 전체의 40%는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이뤄진다는 전망이다. 최근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핀테크가 실용화되기 시작할 경우 이 파급효과는 상상키조차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지점 축소 추세는 가속화될 게 뻔하다.

은행권, IMF이후 체질 바꾸지 않고 혁신도 없어…정부의 규제와 안이함도 한 몫

그러나 은행권의 변화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 금융환경에 비하면 느리기만 하다. 세계 최고의 IT환경이라서 금융환경이 급변할 게 뻔히 예상됐는데도 그 대응은 안이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당시 구조와 체질을 한 번 바꾼 이후 별로 한 게 없다.

작고한 초대 KB금융 김정태 행장의 예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은행의 적은 다른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아니다. 앞으로 최대의 적은 인터넷 포털인 다음(Daum)이다.” 당시엔 SNS도 카카오톡도 없었지만 인터넷이 은행의 경쟁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내다봤다. 무려 20여년 전의 말이다. 결국 그동안 은행권은 시간 연장책만 했다는 얘기다.

한국의 금융산업은 혁신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실에 안주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헝그리정신도 없어서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는 소매금융은 갈수록 설 땅이 없어지는데도 은행들은 아직 소매금융에만 매달리고 있다.

경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가 글로벌화되고 있건만 금융산업은 IMF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화를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다.

여기엔 정부의 안이함과 규제도 한 몫을 했다. 규제로 묶어놓고 정부가 앞장 서는 게 하나도 없다. IMF 직후 금융개혁에 사활을 걸었던 시절에 비하면 헝그리 정신이 없어도 너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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