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은 이제 재미없어질 일만 남았다.

타임 슬립(Time slip)으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김남길의 슬랩스틱은 그가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라든가 하는 현대어를 습득하고 ‘엄청 빠른 가마’의 속도에 적응하는 만큼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진부해질 게 뻔하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그 자리에 현재와 과거의 의료현실 비판과 계급 모순의 포효가 들어서고. 아 나의 ‘명불허전’은 그렇게 ‘가르치려- 드는-예술’의 하나로 전락할지 모른다.

지난 회 다시 조선으로 간 김남길과 김아중은 한 부상병을 보게 되는데, 아뿔사 그는 왜놈 적장이다.

그냥 두고 떠나자는 김남길에게 의사는 어떤 생명이건 살려야 한다는 지엄한 호통이 떨어지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는 구시렁도 잠시 김남길도 의사 정체성을 회복해 예의 그 기~인 침을 뽑아든다.(아 한 방에 기혈을 뚫어 죽어가던 이도 벌떡 일으키는 침, 침의 판타지) 아프고 고통 받는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간종의 인지상정 더하기(항상 소독약과 수술도구를 지참하시는) 의료 전문가의 유능한 대처로 죽어가는 이를 살리니 이 얼마나 다행이고 아름다운가.

이 자명한 사안을 윤리적 고민으로 만드는 것은 그 환자의 정체와 그들을 둘러싼 시대 상황이다.

임진왜란의 한 가운데서 우연히 마주친 죽어가는 적장을 살려내야 하는가? 고민을 제시하기만 할 뿐 해결은 초간단, 단순명료하게 의사윤리의 압승이니 이건 뭐 고민을 한 게 머쓱할 지경이다. ‘의료활극’이 더 나가는 것도 우습지만.

김남길과 김아중이 의사일 뿐 아니라 조선 백성이고 한국 국민이라는 것을 보다 진지하게 끌고 간다면? 왜 그들은 환자를 살려냈다는 뿌듯함만 느끼는 것 같지? 죄책감은 왜 없지? 자기 선택의 무게(살아난 적장은 조선 백성을 숱하게 죽일텐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은 왜 없지?

그들은 적장을 치료할 뿐 아니라 살아난 적장을 관가에 데려가거나 신고라도 해야 한다. 병 주고 약 주고가 아니라 약 주고 병 주고. 전쟁 중에 적장을 살려내고 도망쳐 본대에 복귀하게 하는 것은 이적행위 아닌가?

나는 조선 백성이 아니라 코스모폴리탄이라 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할 말이 엄청 복잡해지겠지만. 여하간 하나의 이적행위는 하나의 이적행위로 ‘보답’받아야 등가교환을 완성한다.

적장은 일주일 안에 한양에 왜군이 당도할 것이라는 고급 정보를 준다. 그 고급 정보를 김남길은 자신이 ‘최애’하는 조수(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구해내는 것으로만 ‘한 없이 가볍게’ 활용할 듯 하니 이적행위의 등가성이 좀 기우는 듯도 하다.

▲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 8회 주요 장명/tvN 제공

드라마는 드라마 문법상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드라마도 아닌 정치에서 과감한 생략과 눙치기가 나오는 것은 무슨 일인가. 그 생략과 눙치기를 위해 동원된 단어가 ‘생활보수’다. 생활이라. ‘생활의 발견’, 생활임금 등은 들어봤어도 생활보수라는 말은 과문한 탓인지 낯설기 만하다.

그것은 무슨 보수와 대조되는 말인가. 이념보수? 이상보수? 이데올로기 보수? 그렇다면 “그 장관 후보자는 이념보수가 아니라 생활보수입니다”라는 말인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다보니, 그냥 소시민으로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자잘한 보수적 행위 몇 번 했어요.

그렇다고 뉴라이트나 꼴보수나 박근혜빠나 그런 골수 이념보수로 몰면 엄청 오바 아닌가요? 그런데 그가 보수성을 드러낸 것은 그의 드라마 취향이나 소비 취향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활동에서인데, 글 쓰고 강연하는 게 과학자의 ‘생활’이지요? 여기저기 권력에 줄 대는 것이 교수의 ‘생활’이지요?

생활보수라는 논변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장관(후보자)과 소시민, 과학자/학자/교수와 생활인이라는 양 극단의 자유로운 왕복운동이다. 그러면서 생략되고 무시되는 것은 그의 시민성, 시민으로서의 존재방식이다. 그도 시민이다. 어떤 시민인가(이었나)?

생활보수라는 요설을 만들면서 그를 장관으로 앉혀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혹 (의도치 않은) 협치? 그냥 검증부실을 인정하는 게 그나마 모양이 덜 나빠질 듯하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는 고려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고려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최근 강사직을 그만두었다. 공동체주의에 관심이 많아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한 때 한겨레신문에 ‘야 한국사회'란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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