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에 대해 “성장하고 있던 아테네의 국력과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전쟁을 피할 수 없게 했다”고 설명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북한이 장거리 핵미사일로 미국 본토 타격을 공언한다지만 북핵 문제의 중재자로서 ‘새로운 강대국 관계’를 주장하는 중국의 행보는 미국의 대북한 정책에 원천적인 우려를 안기고 있다.

북한의 돌발행동과 그로 인한 미·중 사이의 비관적인 충돌을 피할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에 관해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오바마 1기 행정부의 국무부 제1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라큐스대 교수와 미 브루킹스연구소 국가 안보정책 연구원 마이클 오핸런이 미국과 중국 각계 권위자들의 조언을 받아 펴낸 ‘21세기 미중관계 : 전략적 보장과 각오’는 그중 주목되는 책이다.

책은 양국의 전략 결정 요인을 분석한 뒤, 관계의 안정을 지속시킬 실질적인 전략적 보장 방안을 제시한다.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보고서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정책은 중국과의 충돌이 필요하지 않고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 기술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사소한 군사적 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을까? 북핵 사태가 확산된다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 『21세기 미중 관계 : 전략적 보장과 각오』 = 제임스 스타인버그, 마이클 오핸런(공저). 박영준 역. 아산정책연구원. 2015. 11.23.

“미군의 핵심 목표는 북핵시설과 평양”

‘잃지 않으려면 사용하라’는 말이 있다. 현재로는 북한의 괌 인근 미사일 공격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긴급 사태가 발생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충돌 시나리오가 그렇다.

국군의 ‘5027 전시 계획 보고서’는 북한이 중국의 지원이 없더라도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응해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개정된 한국의 교전 규칙은 ‘북한의 도발에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사거리가 더욱 길어진 탄도 미사일 개발을 결정해 대응하고 있다.

반면 전쟁 발발시 미국의 핵심 목표는 북한 핵시설 장악이다. 이를 반영해 한미연합사의 ‘작전 계획 5029’에는 북한 내부에서 혼란이 발생할 경우 무엇보다 ‘북한의 핵물질을 겨냥해 미군이 개입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은 상황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첫째 미군이 자신의 국경선에 주둔하기를 원치 않고, 둘째 그로 인해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은 북한 지역을 장악해서 일종의 완충 지대로 삼을려고 할 수 있다.

두 강대국이 일찍이 사전 계획이나 즉각적인 조정을 거치며 군사 대치를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초기에 사태를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다. 당장 양측 군대는 북핵 시설 확보를 둘러싸고 치열한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게다가 사담 후세인이나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할 때 그랬던 것처럼 미국의 현대 군사전은 언제나 ‘선제공격에 따른 수도 함락’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잘 아는 중국은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사보다 평양에 먼저 도착하고자 신속히 움직일 것이다.

▲ 최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1인 체제를 굳힌 것으로 평가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사진 = 아산정책연구원 제공)

“미국의 대중 제재, 일석이조 커녕 부메랑 될 것”

그렇다면 미군의 대응 시나리오는 어떠해야 하는가? 스타인버그 교수는 먼저 중국군과의 조율이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미군이 북한에 주둔한다 해도 전쟁 종료와 함께 군대를 철수한다고 중국에 약속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 통일 이후 나토(NATO)가 채택한 방식이다.

더불어 양측이 긴급 대화 채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수준은 1998년 양국 사이에 개설된 정치적 핫라인이나 군사해양협약(MMA)보다 높은 군사적 채널이어야 한다. 과거 쿠바 핵미사일 위기 직후인 1963년 미국과 소련 간에 가설된 핫라인이 유사한 전례다. 그밖에도 상황의 급박성으로 인해 양측이 사전 협의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보다 포괄적인 형태의 대화가 필요하다. 반관반민의 안보 협의체인 ‘1.5트랙 대화체’에 그 역할을 맡기는 방안이 그중 하나다.

책은 위 시나리오를 포함하여 양국 간의 구체적인 군사·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해 세 나라가 ‘윈-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한다. 이 때 ‘전략적 보장’은 한국이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전제로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군사적 문제에 대해 미국의 일관된 각오(resolve)”라고 지적한 것처럼 돌발상황이 터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국이 무어라 하건 한국 영공과 일부 겹치는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ADIZ)을 미군이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는 양국 관계를 장기간에 걸쳐 악화시킬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핵 비협조를 빌미 삼아 중국의 지적재산권 도용 등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를 지시했는데, 이는 그간 유엔 안보리 등에서 미국에 충분히 협력해 왔다고 생각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격노하게 만들었다.

이 조치는 당장 미국에 ‘꿩 먹고 알 먹는’ 이득을 줄 수 있지만 오히려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양국 관계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미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고, 정치적으로는 ‘북한 지렛대’ 효과를 절감한 중국이 김정은 정부를 비호하여 북핵 능력을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 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를 두고 “무역이나 북핵 문제에 당장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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