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몇 년 전만 해도 태국과 베트남의 주요 TV방송을 틀면 한국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태국의 50여개 채널 중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계 방송 10여개를 제외한 40여개 채널 3~4군데서 한국 드라마나 ‘1박2일’등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방영되곤 했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런데 올 여름 방콕 체제 한 달 중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가끔 아이돌 가수의 공연 프로그램 정도를 볼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동남아에서의 한류의 퇴조는 분명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지난해부터 중국에 ‘한한령’(限韓令)이 내려진 뒤 중국에서 한류가 찬물을 맞았다. 중국에 이어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국가들에서도 한류가 시들기 시작한 것 같다.

TV드라마, K-팝과 아이돌 가수의 인기를 바탕으로 시작한 한류의 흥망은 한국 음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드 부지로 성주골프장을 내어줬다는 이유로 롯데쇼핑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중국인의 매장 입장을 막더니 아예 문을 닫게 되는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에 이어 신세계의 이마트도 문을 닫고 곧 철수한단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현대·기아차도 소비가 격감했고 삼성 핸드폰도 중국의 샤오미 등 저가공세에 밀려 퇴조하고 있다.

국내의 서울과 제주에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격감으로 면세점뿐만 아니라 명동 등지 작은 상점의 한국 화장품 판매가 격감했다. 중국내에서도 지난해 한국 화장품의 판매량이 확연히 줄었다한다.

몇 년간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한류는 K-POP공연과 TV드라마였다. 지난 5년간 여름과 겨울, 태국의 방콕과 베트남의 호치민을 다니면서 확연히 느끼는 바였다.

그런데 올 여름 두드러진 특징은 태국의 한류는 완전히 퇴조하고 베트남은 어느 정도 한국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불안을 느낀 한국 공장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베트남으로 많이 이전한 점도 붐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2012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강남스타일'로 대상인 올해의 노래상을 비롯해 4관왕에 오른 싸이가 2012년 11월 30일 홍콩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2012 MAMA'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홍콩=뉴시스 자료사진

태국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거의 없어지면서 2~3년간 호조를 누렸던 빙수가게가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한다. 동남아에 올 때마다 더운 나라에 왜 빙수 가게가 없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3~4년 전부터 베트남과 방콕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빙수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세계5대 음식이라는 태국음식 중 대표적인 똠양꿈 송땀 팟타이 풋빵똥커리 등 우리보다 조금 더 ‘맵짜달시’(맵고 짜고 달고 시고)여서 달콤한 팥앙금을 넣은 팥빙수가 먹혀 들어가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방콕과 베트남 교민들에게 물어보면 여러 번 팥빙수 판매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하다 5년전쯤 베트남부터 한국 빙수가 성공했다. 얼음을 그대로 갈아 만든 게 아닌 우유빙수인 ‘설빙’(雪氷)이 먹혀 든 것이다.

동남아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팥앙금 대신 망고 멜론 오렌지 수박 등 과일을 듬뿍 얹어 만든 과일빙수가 인기를 끌었다. 방콕 시내 한복판에 ‘설빙’ ‘바닐라 스노우’ ‘한빙고’ 등 한글로 된 간판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러나 일부는 2~3년 만에 문을 닫을 형편이다.

‘사탕수수’가 지천인 동남아인들은 단 것을 수시로 먹는다. 따라서 달콤한 팥빙수가 먹힐 줄 알았는데 삶은 콩팥의 식감이 이들에겐 안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상식하는 망고나 멜론 등 과일을 듬뿍 얹은 설빙수가 인기를 끈 것 같다. 이들은 기름기가 없어 날아갈 듯한 ‘안남미’를 ‘찰밥’보다 선호한다. 찰밥으로 만드는 떡도 식감이 안 좋아 잘 안 먹는다. 찰밥에다 망고 등 단 것을 얹어 야자나무 잎에 싸서 먹는다.

베트남에는 한류가 아직도 성황이다. 화장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뉴타운인 호치민 7구역의 한인 거리는 1980년대 초 서울 여의도와 비슷했다. 특히 한국 호텔, 식당, 찜질방은 물론 대형 롯데쇼핑, CGV 영화관 등 주변은 강남 테헤란로 수준으로 대형화된 거리풍경이다.

대형 쇼핑몰의 아모레화장품은 물론 작은 스파나 헬스케어 숍에서 애경화장품의 ‘루나’(LUNA), 마스크팩 ‘왠’(WHEN)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에서 무역업을 하는 김태환 사장(55)은 한류의 퇴조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요 근래 드라마는 <대장금>이나 <별에서 온 그대>처럼 대박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소녀시대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만한 대형 가수들의 작품이 없었던 점을 들었다.

김 사장은 그러나 “베트남의 한국붐은 아직 여전하다. 겉으로는 퇴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베트남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유치나 무역규모 증가 등 중국에서의 퇴조를 대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2013년 8월 3일 태국 방콕 무앙통타니 임팩트 아레나 공연장에서 열린 슈퍼주니어의 월드 투어 슈퍼쇼 5 콘서트에서 슈퍼주니어가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방콕=뉴시스 자료사진

재판중인 박근혜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폐해인지 모르겠다. 창조적인 예술·연예 분야가 위축되니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이 창의적인 PD들을 쫒아내고 간판 프로그램을 없앴는데 어찌 좋은 작품을 기대하겠는가? 지도층이 국가의 장래보다 사적 이익을 탐하는데 어찌 국가의 국제적 위상이 지켜지겠는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입추, 처서에 새 정부에 맞는 국가 분위기 쇄신을 기대해본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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