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죄와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구형하는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게 중형을 구형했다.

▲ 최성범 주필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 범죄로 국민 주권의 원칙과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는 게 특검이 중형을 구형한 사유다.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25일로 예정된 선고를 앞두고 18일간의 숙고에 들어갔다. 생중계 여부마저 논의될 정도로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판결을 받게 될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느끼는 압박감은 엄청날 것이다.

어떤 판결이 나오든 논란을 빚을 게 뻔하고 그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이다. 재판부로선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국민 여론은 이미 유죄로 결론 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433억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유죄를 받지 않거나 형량이 가벼울 경우 국민 여론이 비등할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로서도 여론의 동향에 부응하는 편이 개인적으론 편하고 안전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진행돼 온 재판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도덕의 잣대로는 이재용 부회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법의 잣대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판결이 여론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관련된 판결이 여론과 정치적 카타르시스에 의해 움직인다면 법치국가가 아니다. 이는 촛불혁명의 정신이기도 하다. 민주사회란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이 구현되는 사회로 이해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정에서 특검은 그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에 관한 한 어떠한 혐의도 입증하지 못했다.

핵심인 뇌물공여죄 대신에 재산 국외도피죄로 구형 형량을 높였을 뿐이다. 삼성 법무팀의 일사분란한 지휘 아래 증언이 이뤄져 수사에 애로를 겪었을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는 있지만, 방대한 수사 결과 뇌물공여죄에 관한 한 밝혀 낸 게 없다면 그게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특검이 배포한 결심공판 논고문에 나와 있는 ‘디테일의 늪에 빠지고 하여’라는 표현이 이를 반증한다. 쉽게 말해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정황적 증거와 사회적 당위성의 차원에서 판결을 내려달라는 주문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평범한 사람의 재판이었다면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방대한 수사를 했지만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만큼 해당 혐의에 관한 한 판결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이 평범한 국민은 결코 아니다. 국내에만 59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며 주력기업인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50조원으로 국가예산과 맞먹는 국내 최고인 삼성그룹의 후계자이자 오너다.

도덕의 잣대와 법의 잣대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법 앞에서의 권리를 이 부회장에게도 인정하는 게 선진화된 민주사회가 가야 하는 길이 아닐까. 보통 사람에게 인정되는 권리를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선 곤란하다. 아무리 재벌개혁이 시대적 과제라고 해도 재판과 재벌개혁은 별개의 문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판결이 법리가 아닌 여론에 좌우되는 재판으로 흐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여론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는 이 부회장이나 삼성그룹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부회장으로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거에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라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오뚜기그룹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이게 모두 제 탓이었다”는 이 부회장의 최후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본인도 이제 이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과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의 전환사채(CB) 및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3자 발행 등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법망을 피해간 사실을 두고 이제 그 죄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은 이 부회장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재판은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줄 수는 있어도 민주사회, 법치국가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과거의 원죄에 대한 단죄는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뤄졌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사회적 메시지도 충분히 던져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도덕의 잣대와 법의 잣대는 달라야 한다. 그게 법치 국가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