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행정학 박사]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제일 눈에 띄는 게 길거리 식당과 가판대다.

▲ 남영진 논설고문

호텔의 경우엔 잘 몰랐는데 숙소에서 간단히 취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음식을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전기 인덕션 장치나 전자레인지 정도가 고작이고 가스레인지는 거의 없다. 태국 방콕의 대부분 시민들도 가까운 시장에서 밥(한 봉지 200~400원, 2인용)이나 반찬을 가게에서 비닐에 싸와서 집에서 먹는 구조다.

1년 평균기온이 섭씨 30도 정도의 열대지역이니 주택의 난방은 필요 없다. 대신 도시지역은 하루 24시간 에어컨으로 냉방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같이 4계절이 뚜렷해 적어도 3번의 옷갈이를 해야 하고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을 해야 하는 불편은 없다. 해서 옷도 간단히 입고 식사도 돼지고기, 닭고기, 민물고기 튀김에 지천인 야채 위주의 친환경 식사다.

가는 곳마다 냉방이 잘 되어있어 연간 전기소비량이 많을 텐데 어떻게 전기 공급을 하나 궁금했다. 우선 대도시 주변에 화력발전을 꽤 한단다.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 발전소이다. 최근에는 비닐 생활쓰레기를 태우는 복합 화력발전소도 건설 붐이다.

사철 바람이 많아 일부 풍력발전도 한다. 가장 안정된 공급원은 라오스 캄보디아 국경을 이루는 메콩강 댐에서 수력 전기를 싸게 공급받고 있다. 아직 원자력발전소는 없다.

이번 태국여행 중에 일본 추리소설 ‘천공의 벌’ 번역판을 읽었다. 제목을 보고 살인, 도난사건 등을 다룬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본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끝까지 사건의 결말을 암시하면서도 범인의 윤곽을 알 수 없게 만들어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추리소설의 ‘잔 맛’이 무거운 주제를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지시이후 탈원전이 국가적 이슈여서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저자도 잘 몰랐고 제목으로는 내용도 잘 추측할 수 없어 겉표지의 소개문을 보았다. 핵발전소 관련이라서 2011년 3월의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 후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 16년 전에 쓴 것이었다. 또 저자가 환경전문가로 원전 반대 운동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방사능 피해를 입은 자위대 출신 항공전문가와 원전 시공업체의 직원이 자위대에서 새로 개발한 헬리콥터를 훔쳐 원전위에 머물게 하면서(호버링) 일본정부로 하여금 모든 원전을 멈추게 한다는 스토리다. 폭탄을 실은 헬기의 연료가 다 타면 자동으로 떨어져 원전이 폭파되는 대참사를 전제로 한다. 원전 관계자들은 폭탄을 실은 헬리콥터가 떨어져도 원전은 안전하다고 강변했다.

▲ 지난해 2월 10일 보호복을 입은 기자들이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도쿄전력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 저장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오쿠마=AP/뉴시스 자료사진】

그러나 정부는 그 위험성을 알고 범인들에게는 모든 원전을 정지시켰다고 거짓말을 한다. 범인들은 이미 정부가 거짓말을 하리라고 예상하고 원전에서 나오는 냉각수의 온도변화를 열적외선 촬영으로 감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거짓게임’에서 일본 경찰과 자위대의 예리한 추리와 기민한 대응으로 진범을 알아낸다. 결국 용감한 사무라이(자위대원)들은 헬리콥터까지 접근해 프로펠러 방향을 조금 틀어 발전소 바로 위가 아닌 근처 바다로 추락하는 해피엔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 건설 중단 지시이후 야당과 원자력 전문가들이 전력수요 문제와 전기값 인상 우려 등을 내세워 반대하자 청와대는 지난달 25일 민간 ‘공론화위원회’를 가동시켜 이를 처음부터 다시 검증키로 했다.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위원장을 단장으로 9인의 위원들은 10월 21일까지 90일간 우리나라 전력정책과 특히 원자력발전의 안정성과 건설 여부 등을 판가름할 ‘중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의 포화지역에 위치해 있다. 원전은 현재 25기 가동되고 있고 전체전력의 30%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부산 울산 경주 영덕 울진 등 동남해안에 19기, 전남 영광해안에 6기가 있다.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현장/뉴시스 자료사진

게다가 우리 동해가 면해있는 일본 동북부 해안, 그리고 서해와 면해있는 중국의 동해안에 집중 건설돼 있어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 만약의 사고가 나면 곧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다행히 지난 2013년 일본의 동북아대지진은 태평양연안이어서 직접 피해는 없었다.

원전 1곳이 폭발하면 1945년 히로시마원폭 피해의 400배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 등 원전 선진국들은 ‘사고제로’를 내세우며 건설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건설 30년이 지나면서 1979년 미국 동북부 펜실베이니아 쓰리마일섬, 1986년 구소련의 우키라이나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자연재해와 인재가 겹친 대규모 사고가 이어졌다. ‘원전사고 제로’의 신화가 깨진지 오래다.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맡긴다 해도 인재를 줄이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전력증산은 필요하지만 좀 편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

가정과 사무실의 전기사용을 줄이고 대기업 공장의 전기요금은 올려야한다. 석탄보다는 비싸지만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늘리고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태양광 태양열발전, 소수력발전소를 많이 만드는 등 에너지정책을 다변화해야 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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