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문재인 정부가 나랏돈 씀씀이를 늘리고 분배를 강화해 양극화와 저성장을 극복하겠다는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공개했다.

▲ 최성범 주필

기업 주도의 설비투자에 의존하는 성장 정책을 대신해 정부예산을 통해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를 늘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제이(J)노믹스’ 실험이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대전환한다는 선언이 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대로 기존 경제 정책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훗날 경제학 교과서에는 제이노믹스가 어떤 경제 정책 또는 경제철학으로 기록될까? 일단 기존의 경제학 이론이나 정책, 철학으로는 제이노믹스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 풍미했던 경제이론과 정책과 연관 지어서 보자면 제이노믹스는 20세기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전세계를 휩쓸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춤해진 신자유주의정책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J노믹스는 최근까지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와 대척점

신자유주의는 공식적인 경제정책이나 이론은 아니지만 1990년대 초 구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시장중심적 사고가 득세하면서 전세계적인 그 시대의 조류를 풍미했던 사고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미국 정부가 그 분위기를 사실상 주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990년대의 미국정부의 경제정책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취임 이후 전세계적인 차원의 시장 개방을 염두에 둔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을 주도함으로써 사실상 신자유주의 창시자나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여기에 월가의 주주 중심주의가 맞물리면서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인 개방과 개혁, 혁신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론적 뿌리를 굳이 찾는다면 밀튼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를 위시한 이른바 시카고 학파의 신고전주의를 들 수 있다. 시카고 학파는 시장 경제를 철저하게 신봉해 정부기능 최소화를 주장한다.

신자유주의가 기업 중심의 성장, 효율 및 성과 제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기반한 사고인 만큼 기업보다는 가계와 소득주도의 성장을 하겠다는 제이노믹스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분명하다.

특히 트럼프의 경제정책과는 정반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제시한 경제정책은 지난 1981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이른바 레이거노믹스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당시 그는 공급주의(supply-side) 경제학 이론을 근거로 세금을 인하하고 사회보장 사업에 대한 연방 정부의 개입을 대폭 축소했다.

▲ 문재인정부의 ‘제이(J)노믹스’는 기존 경제 정책의 대전환이 아닐 수 없다. 'J노믹스'는 유효수요를 확대해야 한다는 케인즈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진은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세종실에서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환담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세금 감면으로부터 축적된 자금이 기업 투자로 전환됨에 따라 생산 증대, 고용창출, 그리고 소득 증대 등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경제정책이었다. 전형적인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의 경제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이후 35%에 달하는 법인세를 20~25%대로 파격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2012년부터 시행한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과 엔고(円高) 탈출을 위해 화폐를 무제한 찍어내는 등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금리 인하를 통한 평범한 경기부양책이라기 보다는 엔화 약세를 통해 기업들의 수익성 제고를 기반으로 한 경기부양책이라는 점에서 그 원리는 공급주의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기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 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했던 정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이노믹스는 어떤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겉 모양은 다소 다르지만 근본 철학은 케인즈(Keynes) 경제학에 해당한다고 본다.

케인즈 경제학은 1929년 발발한 대량 도산과 실업 사태를 초래한 대공황 발발 이후 집권한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시했던 뉴딜정책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부족한 유효수요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규모 투자하는 뉴딜 정책은 대공황 탈출의 계기가 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 정부 재정 기능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케인즈의 주장이었다. 케인스는 "빈 병을 땅에다 파묻고 정부가 사람을 고용해 빈 병을 파내라"라는 말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수요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재정 투입해 일자리 창출…유효수요 확대라는 케인즈 이론과 일맥 상통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도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하는 것은 유효수요를 확대해야 한다는 케인즈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산 투입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이 비판을 받으면서도 밀어붙이는 모습은 ‘빈병을 땅에다 파 묻고 다시 파내라’는 케인즈의 말을 연상케하기도 한다.

다만 당시 뉴딜 정책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두었다면 제이노믹스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해 정부가 직접 소득주도의 성장을 하겠다는 점이 차이다.

일자리와 소득 창출을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진작함으로써 경기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근본 원리에는 다를 바가 없다. 당시 루즈벨트 정부가 대규모 월가 개혁을 통해 금융공황 재발의 가능성을 없앴다는 점에서 적폐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방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제이노믹스는 케인즈 경제다.

케인즈의 경제이론은 전세계를 대공황으로부터 구해냈고 미국을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시켰다. 케인즈 경제학처럼 제이노믹스가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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