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현우 조지아 서던 주립대 교수] 사회 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 박사는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통해 서로 다른 환경에서 동양과 서양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말하였고,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 박사는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으로 사고하고 말한다고 하였다.

▲ 이현우 교수

서양에서는 의사소통이 단어의 의미 자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뜻을 명백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동양에서는 다양한 맥락 가운데 그 의미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서양 사람들은 농담임이 명백한 말을 하고도 조크였다는 것을 굳이 또 밝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시기’한 것과 ‘가가 갸가’라는 말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계약서가 가지는 힘에도 차이를 불러오는데, 동양에서는 신뢰와 관계에 기반한 거래가 중요시 되는 반면에, 서양에서는 서로 서명한 계약서의 내용이 절대적이다.

이는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계약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이익과 손해를 감수해야하고 그에 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희비가 교차하기도 한다.

오늘은 스포츠계의 수많은 계약 중에서 가장 어처구니 없는 계약서 중 하나로 꼽히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프로농구협회(NBA)는 1976년에 아메리카농구협회(ABA)와의 합병을 진행하면서, 4개의 팀(현재의 덴버 너겟츠, 브루클린 네츠, 샌 안토니오 스퍼스, 인디에나 페이서스)을 인수하는 동시에 다른 팀들에게는 돈을 지불하면서 철수를 하도록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 중 한 팀이 세인트 루이스 스피릿츠였는데, 스피릿츠의 구단주들은 NBA에 편입하기를 원하였으나 NBA는 스피릿츠를 인수하길 원하지 않았고 대신 돈을 지불하고자 하였다.

이때 스피릿츠의 구단주들은 220만 달러(약 25억원)와 함께 인수된 4개 팀 당 TV 중계료의 1/7을 받기로 하였다. 즉, 아무런 운영비용 없이 NBA 팀의 4/7에 육박하는 중계료를 받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중계권 수입에 대한 계약은 영구지급(perpetuity)되는 것으로 체결되었다.

▲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딜론 브룩스가 11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미국 프로농구(NBA)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내리 꽂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AP=뉴시스]

당시에는 TV중계권이 구단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였으나, 중계권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으면서 NBA는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기 시작하였다.

NBA가 소송도 해보고 이 계약서를 사들이고자(buyout) 수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이들은 복지부동이었다. 별 생각없이 영구지급 조항을 명시하였다가 어마어마한 출혈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의 동양적 사고에 따르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거나 국가기관에서 조정을 해줄 법도 한데, 서양에서 상호간에 계약서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고 절대적이었다.

2012년까지 스피릿츠의 구단주들은 어떠한 운영비용 없이 2억55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고, 2014년에 이르러서야 NBA는 이 계약의 대부분을 5억 달러에 인수할 수 있었다.

물론 5억 달러가 어마어마한 금액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사람들은 왜 이 황금알을 낳는 계약을 스피릿츠 구단주들이 매각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이들이 금융사기에 당해서 급하게 현금이 필요하다는 설이 떠돌았다.

돈에 대한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는 것과 함께 철저하게 계약서와 자본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미국 프로 스포츠 세계의 단면을 통렬히 보여주는 계약서였다.

미국 프로 스포츠는 모든 중계권과 스폰서십에 대한 계약서들이 다양하게 체결되어 있어서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태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더 많은 중계권료와 후원액이 좋을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은 계약으로 인해 운영의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한 예로 유럽 프로축구에서 운영되는 승급제를 미국 프로 스포츠에 적용했다가는 매년 수많은 소송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럽형 모델도 아니고 미국형 모델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