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6월말 중국 시진핑(習振平) 국가주석이 홍콩반환 20주년을 맞아 홍콩을 방문했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의 함대에 패한 청나라 정부가 광둥성(廣東省) 작은 섬의 포구였던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다.

그 뒤 150년 만에 영국의 식민지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4룡’(龍)의 하나로 성장한 홍콩이 1997년 중국정부에 반환된 것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

당시 중국기자협회 초청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던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의 일원들은 중국기자협회 건물 앞에 휘날리던 ‘不忘150年國恥’(150년 국가의 수치를 잊지 말라)라고 쓰인 휘호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 공산당 주석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해 홍콩을 넘겨주었던 과거를 ‘국치’라고 표현하면서도 작은 섬이었던 홍콩을 아시아 중계무역 1위의 국가규모로 성장해 돌려받은 데서 자부를 느끼는 것 같았다.

같은 시기 홍콩의 한국계 금융회사 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당시의 홍콩에서 썼던 감회의 글을 20년 만에 찾아 동창회 카톡에 올렸다.

“7월 1일 반환식을 1주일 앞둔 6월 23일 영국의 찰스 윈저 황태자와 크리스 패튼 총독을 태우고 떠날 로열 브리타니아호가 홍콩항에 입항했다. 28일에는 찰스 황태자가 도착해 각종 철수행사를 주관하게 되며 30일 밤에는 장쩌민 주석과 리펑(李鵬) 총리가 인접한 선전(深圳)에 도착해 배를 타고 들어온다”며 담담히 당시의 상황을 적었다.

그러나 반환 40일이 지난 홍콩의 분위기는 차분했다고 한다. 관공서에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 대신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걸렸다. 89년 천안문사태 때 잔인한 진압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인민해방군 대신에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반환이전과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에 우호적인 행정수반에 대한 만족도가 반환이전 57%에서 40일 지난 조사에서는 78%까지 올라간 것이 그 예라고 썼다.

20년이 지난 올해 홍콩이 브리티시 홍콩에서 확실한 차이니즈 홍콩으로 변한 것일까? 장쩌민 주석에서 시진핑으로 바뀐 중국 지도부가 지난 6월 29일 홍콩을 방문하기 전부터 홍콩경찰은 800만 명의 홍콩 주민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면서 태국에서 발행되는 <더 네이션지>는 ‘뜨거운’ 홍콩분위기를 전했다. 홍콩 당국은 3년전 몇 달동안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저항운동을 펼쳤던 노란 ‘우산혁명’의 주인공 조슈아 웡, 젊은 입법위원인 네이탄 로 등 20명을 사전에 가택 연금했다.

▲ 홍콩의 주권 반환 20주년인 1일 시위대가 ‘반(反)중국·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홍콩=AP/뉴시스】

2013년 취임해 이번에 3일간 홍콩을 처음 방문한 시 주석은 도착 인사에서 홍콩을 ‘일국양제’(一國兩制: 같은 중국이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그대로 유지시킴)로 남겨두리라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홍콩을 방문하게 돼 행복하다”며 “앞으로 홍콩의 발전을 전적으로 지원해 홍콩의 영광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 9년 후에 다시 홍콩 땅에 다시 올 것”이라고 웃음인사를 보냈다.

이에 앞서 중국 당국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 샤오보(劉曉波)의 외국 추방을 허용할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반체제 인사로 2009년 11년형을 구형받았던 그는 암이 전신에 퍼져 치료차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가겠다는 청원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당국의 민주화에 대한 이같은 이중적 태도를 대하면서 홍콩의 젊은 층은 시 주석의 방문 역시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중국의 발전에 홍콩의 안보와 번영이 달려있다고 믿고 있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지난 20년간 중국 본토의 막강한 영향을 받아 정체성 혼란을 겪어 왔다. 이 일국양제의 정책 속에서 제일 큰 변화는 말과 글의 혼재다. 베이징에서 만든 보통어인 ‘만다린’이 TV와 각종 공식회의에서 쓰이고 있어 그들이 조상 때부터 써오던 ‘광둥어’가 사투리가 되어가고 있다.

홍콩과 대만, 일본,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한자도 중국 당국에 의해 간자체로 바뀌고 있다. 같은 중국어이지만 말과 글이 달라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외국어 공부하듯 배워야 한다.

민주화 리더인 죠슈와 웡은 “홍콩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그 문화와 가치가 다른데 중국 당국이 이를 무시한 채 동화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지난 20년간 선전에서 주룽(九龍)으로 전철을 타고 본토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벌써 홍콩 인구의 13%에 달하는 100만 명이 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티베트와 위구르신장, 조선족의 거점인 옌벤(延邊)에 한족들을 이주시켜 동화정책을 성공시킨 것과 같이 홍콩에게도 같은 정책을 쓰고 있다고 보고 있다.

▲ 중국 인민해방군 군인들이 지난달 30일 홍콩 부대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사열을 받기 위해 행진하고 있다.【홍콩=AP/뉴시스】

그는 홍콩을 홍콩답게 만드는 것은 동화정책이 아니라 ‘보존정책’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시위당시 “홍콩다움은 제도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 광둥어 사용. 그리고 고유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라며 당국이 홍콩을 좀 더 자유롭게 놔둘 것을 요구한다.

지난 선거에서 홍콩 행정원장도 중국공산당이 지지하는 후보가가 됐다. 젊은이들은 아직도 중국의 강력한 통제를 거부하지만 홍콩에서 사용하는 식수와 물은 모두 중국에서 주룽반도를 통해 들어온다. 물을 쥐고 있는 중국은 홍콩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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