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경제신간 리뷰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지난 6월 19일 자유한국당이 범국민적 응원을 유도할 생각으로 야심 차게 기획한 ‘페이스북 5행시’ 공모전이 시행 나흘 만에 댓글 1만 건을 돌파하는 등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 지난 6월 19일 자유한국당이 범국민적 응원을 유도할 생각으로 야심 차게 기획한 ‘페이스북 5행시’ 공모전은 네티즌들로부터 비난과 비판, 조롱과 분노를 사면서 말의 성찬이 화를 부른 경우라 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대부분의 5행시가 애초의 의도와 달리 비난과 비판, 조롱과 분노로 일관되어 있어 ‘폭망’, ‘참사’라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당사자들이야 ‘흥행 성공’이라 위안할 수 있지만 어느 모로 보나 말의 성찬이 화를 부른 경우라 할 것이다.

언어를 자제함으로써 언어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침묵’에 관한 수사학의 고전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설교가이자 문필가로 활동했던 저자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신부가 펴낸 '침묵의 기술'이다.

디누아르 신부는 말과 글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는 시류를 비판하기 위해 침묵의 가치를 옹호했다. 당시는 루소, 볼테르, 디드로 등 걸출한 사상가들이 무수한 혁명적 담론을 쏟아내던 때였으니 침묵을 강조하는 이 책의 입장은 전통 질서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공격받을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가 말과 글의 침묵을 수사적 기술로까지 끌어올려 그 원칙과 활용법을 제시한 이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책이 거듭 읽히고 인용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는 법”이라며 두 가지 방법의 침묵 즉 ‘자신의 혀를 붙들어두는 것’과 ‘자신의 펜을 붙들어두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때 침묵은 상책의 지혜다. 중책은 말을 적당히 하는 것이며 하책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비롯된 침묵은 최상의 설득력을 발휘하는 무기다.

말의 침묵을 지키는 원칙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14개조 중 일부는 이렇다. 첫째,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둘째,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셋째,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디누아르 신부는 특별히 말을 가볍게 여기는 정치가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 깊이 숙고한 뒤에야 입을 열라. 그대가 마음에 품은 그 어떤 생각도 사소하지 않을 터. 그 모두가 주목의 대상이요, 그 모두에 결과가 따르리라.

▲ 『침묵의 기술』= 저자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역자 성귀수, 아르테(arte), 240쪽, 2016.02.20

침묵은 현명한 글쓰기의 지침이기도 하다. 예컨대 독자를 혼돈과 후회로 이끄는 글쓰기는 종종 과도한 양이나 빈약한 양의 결과이다. 과도한 글쓰기는 모든 생각을 쏟아내려는 만용에서 비롯한다. 그런 글은 대체로 쓸 데가 없고, 미주알고주알 풀어내 의미를 약화시키며,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기까지 한다.

“대체로 말이란 귓전에 울렸다가 사라져버리는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 반면 우리가 읽는 글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와 부지불식간에 우리와 하나가 되는 무엇이다.”

잘못된 글의 위험이란 저런 것인데,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된 침묵의 제1 원칙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침묵보다 나은 쓸 거리가 있을 때에만 펜을 움직일 것.”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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