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진부하지만 민심은 천심이다. 농경시대엔 민심이 농심이었다. 지금은 민심을 여론이라 하고 대부분 도시의 시민의식에서 나온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촛불시위가 바로 민심의 표출이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여론은 여전히 80%에 가깝다.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세월호 순직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등 ‘비정상의 정상화’부터 시작됐다.

▲ 남영진 논설고문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청와대 수석, 장·차관 임명까지 언론의 ‘허니문’기간 지지가 이어졌다. 이때 시중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올봄 극성을 부렸던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싹 없어졌다”는 말이 나돌았다.

기후현상은 맞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의 취임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대성 고기압이 강해져 중국발 서풍이 약해진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기압이 다시 시중의 루머를 만들고 있다. 안경환 법무, 조대현 노동 장관 후보자 등의 결격사유를 일부 보수 언론들이 비판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보고서 채택이 거부된 강경화 외무장관을 임명하자 여의도 하늘에 마른 번개가 번쩍인다. 이 국내 번개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를 둘러싼 한미간의 천둥전조가 민심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적폐청산은 꼭 해야 한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일부 언론의 저항과 기득권층의 사시로 인해 늦어지고 있다. 여기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 계속 쨍쨍한 더위로 이어지면서 가뭄이 심해지고 있다.

해마다 겪는 충남 서부의 가뭄은 정도를 더해가고 곡창지대인 전라남도에도 물이 부족해 모내기를 포기할 논이 있을 정도다. 흐르지 않는 4대강은 물론 저수지에도 녹조가 기승을 부려 농업용수로 쓰기 어려울 정도다.

예년 같으면 6월 중순때면 장마가 시나브로 시작되는데 올해는 하늘에 구름 한점 없는 폭염주의보, 폭염경보가 연일 발동된다. 속타는 농민들은 장기 일기예보에서 당분간 비가 안 올 거라는 뉴스를 듣고 걱정이 태산이다.

농촌의 농민은 전국민의 3%도 안 되지만 산업화, 도시화 추세에 농촌을 떠난 인구의 80%가 아직 농경시대의 정서를 갖고 있다. ‘가뭄도 나라님 탓’이라고 입방아가 시작되면 대통령지지도는 급전직하한다.

지구의 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대구지방에서 바나나가 생산되고 남쪽 지방에서는 열대에서 잘 자라는 소철나무의 긴나무 줄기가 출렁대는 곳도 생겼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일 오후 경기 안성 마둔저수지에서 가뭄으로 말라가는 저수지를 살펴보기 위해 밧줄을 잡고 내려가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그러나 더위는 더위고 비는 비다. 대부분 열대, 아열대 지방에는 우기 건기가 번갈아 오고 동남아의 몬순기후에도 우기에는 장대비가 내려 벼의 3모작이 가능하다.

서해안에 강수량이 적어졌다. 봄철 중국 쪽에서 황사가 올 때부터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5월을 지나면서 습기가 많은 동남풍이 불어 촉촉한 봄비가 내려 이 물로 논물도 하고 봄철 채소를 키운다.

그런데 요즘은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정도밖에 안 돼 서산 홍성 예산 당진 등 충남 북부는 물론 보령 서천 등 논이 많은 충남 남부지역은 상습 한해지역이 됐다.

새 정부도 심각성을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국무총리는 일요일인 6월 18일 서천을 방문하는 등 가뭄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있다. 현장 방문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환경부 실장, 국민안전처 실장, 국토교통부 국장, 도청 행정부지사, 기후환경녹지국장 등 관계공무원이 대거 동행했을 정도로 가뭄피해가 심각하다. 이곳 부사호 일대 염해 피해가 심하고 천수만 서산간척지와 전북의 새만금지역의 염해피해가 시작됐다고 한다.

충남북만이 아니다. 태백산맥을 넘어 푄현상으로 봄철 산불피해를 연례행사처럼 맞고 있는 강원 강릉시는 읍면동장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생활용수 절약 등 가뭄 극복 대책 강화 방안으로 ‘물 아껴쓰기 범시민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했단다.

임시 반상회 개최, 문자 메시지 송부, 안내문 배부, 현수막 및 전광판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의 ‘물절약’을 호소할 계획이다. 80~90년대의 에너지 절약만이 아니라 21세기에도 물절약 캠페인이 다시 등장했다.

▲ 지난 19일 울산 중구 성안동 들녘의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경북에서도 모내기를 한 논 가운데 43㏊에서 바닥이 갈라지는 피해가 발생해 일부 긴급 급수를 했다고 한다. 해변인 포항과 참외출하가 한창인 성주, 그리고 마늘을 캐고 모내기를 한 의성군 등이다. 감자, 고추, 참깨, 콩, 양배추, 고구마 등 밭작물도 피해가 시작됐다.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고 이미 들여온 사드배치 반대를 하고 있는 성주가 더 뜨겁다.

전국이 이런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하천 굴착, 관정 보수, 양수장 보수 등 일제시대 이래의 그 방식이다. 소방차로 물을 공급하는 정도가 바뀐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탓만 할 수도 없다. 평균 강수량이 예년의 60%여서 저수지 저수율도 60%대로 떨어졌다. 새 정부가 새 방식으로 장기 가뭄대책을 만드는 데 지혜를 모아야한다. 단비를 기다리는 민심이 바뀌기 전에.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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