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4번의 낙선, 지지율 2% 만년 꼴찌에서 1위가 되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소개하는 극장 팸플릿의 대표적인 광고카피다. 인간 노무현에 관한 영화는 이미 ‘변호인’에서 선풍이 일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대통령 시절의 내용이 주가 아닌가 생각했다. 언론 시사회 감상이나 영화평을 보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주로 다룬 것으로 소개돼 흥미를 가졌다.

▲ 남영진 논설고문

당시 필자는 노무현 후보의 금강캠프에서 연초부터 언론특보로 활동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극적으로 승리해 6월부터는 민주당사에서 공식 특보로 대선 과정을 함께 지냈기 때문에 영화적 관심보다는 회고적 추억을 더듬고 싶었다.

작은 고향의 읍에서 그것도 소극장에서 외화 ‘미이라’, ‘캐리비안의 해적’과 한창 인기를 끌었던 광해군의 ‘대립군’ 등과 당당히 겨루며 상영되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50여석의 영화관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남녀 대학생부터 40~50대 부부, 그리고 나이든 어른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워낭소리’, ‘다이빙벨’ 등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진실성은 돋보여도 재미가 없다는 게 통설이지만 이미 노무현 문재인 안희정 유시민 이광재 서갑원 등 등장인물들이 잘 알려진 터라 흥미유발 요인이 충분했다.

영화는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 전후를 통해 노무현이라는 사람,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극적으로 그렸다. 2001년말 지지율 2%에서 불과 5개월 만에 이인제대세론을 꺾는 과정이 각 지역 경선마다 생생하게 묘사됐다.

엄청난 불리함을 이겨내고, 불가능 속에서도 그가 원하고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진정성이 각 연설마다 육성에 묻어났다.

노무현은 인권변호사에서 88년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젊은 혈기였기에 5공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혼냈고 90년 3당합당에 반대해 자기의 보스인 YS를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남았다.

이때부터 그의 정치적 시련이 시작됐다. 92년 같은 지역에서 이겼던 여당 후보에게 패했고 이어 부산시장에 출마해 낙선, 그리고 96년 서울 종로구에서 여당인 이명박 후보에게 또 패했다.

▲ 지난달 27일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영화 포스터 영상이 띄워져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때마다 그를 보좌했던 이광재 서갑원 안희정 등 소위 386 운동권출신 보좌관들은 함께 눈물을 삼켰다. 이명박 의원이 선거법위반으로 물러나고 98년 정치1번지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재선이 된 노무현 의원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0년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출마해 사전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상대 후보의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캠페인에 걸려 또 한번 낙선한다.

당시 미디어오늘 사장이었던 나는 선거 1주일전 쯤 김해공항과 가까운 아파트에서 노 후보를 만나 커피타임을 가졌다. 그간 부산 경남 지방의 여러 언론 여론조사가 고무적이라며 격려하고 헤어질 때 “이번에 꼭 당선돼 더 큰 일을 도모하셔야지.”라고 덕담을 건넸다. 노 후보는 배웅을 하면서 “남 선생님, 선거결과는 모릅니다. 여기는 부산입니다”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결과는 또 낙선이었다. 지역 갈등을 넘어 동서화합을 내세운 그는 상대 후보를 비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소신을 폈다. 이 때문에 ‘바보 노무현’이 탄생한다. 정치적 재기가 거의 힘들다고 생각했을 때 드라마가 시작된다.

노무현은 국회의원 선거, 부산시장 선거 등 4번의 낙선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주민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정치인은 선거민을 비난하면 안 된다면서…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변호인’의 포스터./뉴시스 자료사진

그의 진심, 남을 비방하고 헐뜯지 않는 그의 진심어린 연설과 모습에 감동한 팬들이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다가 드디어 ‘노사모’라는 팬클럽이 전국적으로 생기게 된다.

‘바보 노무현’을 살리자며 자발적으로 모임을 갖고 ‘노풍’을 만들어간다. 이 힘이 민주당 경선전 4~5%의 지지율에서 각 지역경선을 치루면서 김중권, 김근태, 한화갑, 정동영 등 막강한 상대를 꺾고 이인제라는 산을 넘었다. 기적이었다.

영화에서 경선의 막판뒤집기, 클라이막스는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 장인의 빨치산 경력을 들어 "우리 민주당에서는 이런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안됩니다"라는 색깔론을 제기했을 때다. 가족까지 건드린 연좌제였다.

연단 뒤에서 표정이 어두워졌던 노무현은 이 색깔론에 정면으로 맞서며 “보지도 못한 장인의 좌익 활동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외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창재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자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의 자살이후 모든 영상들과 자료들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을 느끼게 됐고 4년 전에 이 영화를 기획해 2016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감독은 개봉까지는 생각 못했다는데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됐다.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을 맡은 것은 이 시대적 분위기를 탔을 것이다. 한 인간을 잔잔히 조명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다큐멘터리였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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