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김동인의 소설에 ‘배따라기’(1921)라는 작품이 있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한 사내의 기구한 운명담을 듣게 된다. 그 사내는 잘 생긴 동생과 아내와 함께 사는 데, 동생과 아내의 사이를 의심하게 된다. 어느날 사내가 장에서 돌아오니 아내의 옷매무새가 풀어져 있고, 동생과 아내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어 형은 아내와 동생 간의 간통을 확신하게 된다.

사실은 아내와 동생이 집안에 들어온 쥐를 잡다가 그런 일이었지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사건이 터진 후. 아내는 분한 마음에 자살하여 다음 날 시체가 바다에 떠오르고 동생은 집을 나가 뱃사람이 되어 행방이 묘연하다. 수십 년이 흐른 후 형은 동생을 찾았지만 동생은 “다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또 떠나간다.

한 형제의 운명적 비극을 다룬 내용의 소설 ‘배따라기’는 무당의 굿에서 착상한 소설임이 분명하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소설 ‘배따라기’의 앞부분에는 당시 무당의 굿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서도 좌창으로 불리는 ‘배따라기’는 원래 평안도 지역의 굿의 한 부분이었다. 현행 ‘배따리기’의 가사를 보면 뱃사람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하여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운 좋게 영좌(선장)과 화장아이(배에서 밥 짓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와 장손 아비는 살아남아 3년 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배따라기’ 시작 부분이 소리하는 사람마다 또는 책마다 조금씩 가사가 다르다.

윤회윤색은 다 지나가고(김정연, <서도소리대전집>)

이내 춘색(春色)은 다 지나가고(이창배, <한국가창대계>)

윤하윤색(潤夏潤色)은 다 지나가고(박기종, <서도소리가사집>)

윤하윤삭(閏夏閏朔)은 다 지나가고(최창호, <민요따라 삼천리>)

이렇게 여러 버전이 있기에 정작 노래하는 사람들도 무엇이 옳은지 헷갈리게 마련이다. 그 다음 가사는 “황국단풍이 다시 돌아오누나”이다. 즉 “가을이 다시 돌아 왔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앞의 내용은 “여름이 지나가고”의 뜻이 되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내 춘색’은 “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뜻이 되므로 아닌 듯하다. ‘윤하윤색’은 한자의 어법상 맞지 않다. 억지로 해석하면 “빛나는 여름과 빛나는 색”이라고 해서 뜻은 통하지만, ‘윤색(潤色)’은 원고를 고쳐 다듬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달이 낀 여름’이라는 뜻의 ‘윤하윤삭(閏夏閏朔)’이 내용상으로는 가장 어울리는 말이 된다.

▲ 서도 좌창으로 불리는 ‘배따라기’는 원래 평안도 지역의 굿의 한 부분이었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는 평안도 무당의 굿에서 착상한 소설로 알려졌다. 사진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예능보유자 황용주(75) 명창이 지난 2012년 서도좌창 등 서도소리를 공연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특히 ‘배따라기’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잘 일어나는 일이 아닌 특수한 상황이기에 일반적인 평달이 아니라 윤달이 낀 특수한 달을 앞머리에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면 ‘윤하윤삭(閏夏閏朔)’이 더욱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윤하윤삭으로 표기된 가사는 북한의 평양출판사에서 1995년에 간행한 책에서 나온 것이며, 최창호도 북한의 학자이다.

‘배따라기’가 원래 북한 지역의 노래이기에 이러한 주장은 조금 더 설득력을 얻는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꾼들은 ‘윤하윤삭’으로 불렀으면 한다. 대부분의 소리꾼들은 스승이 가르쳐 준대로 그대로 외어 부르지만, 잘못된 가사는 고쳐 부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태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부분 가사는 “윤달이 낀 여름은 다 지나가고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 된다.

서도좌창 ‘배따라기’는 수심가조로 끝내기에 서도좌창으로 분류되지만 굿에서 나와 좌창으로 발전한 이색적인 소리이며, ‘잦은 배따라기’ 등의 민요로도 발전한 아주 특이한 소리이다. 또한 ‘배따라기’는 소리의 난해도가 높기도 하고, 서사구조가 포함되어 있는 것임으로 해서 앞으로 창극이나 기타 창작극으로 발전시킬 소지가 다분하다고 하겠다.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이면서 평양 출신인 김동인이 굿 ‘배따리기’를 보고, 소설 ‘배따라기’를 창작한 것도 바로 ‘배따리기’가 가진 서사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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