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국악 가사 이야기

[이코노뉴스=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19세기 초 평양 기생 66인의 사소한 일상사를 다룬 책인 한재락의 『녹파잡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하응백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

섬양은 나섬의 아우이다. 나는 여러 손님과 경파루 밑으로 그녀를 방문했다....(중략)....그녀가 손님을 배웅하고 난간에 기대 소동파의 ‘전적벽부’와 우리나라 사람이 지은 ‘죽지사’ 몇 수를 읊은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녹파잡기』 p.67)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죽지사’인데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이 지’었다고 했고, 또 다른 기록에서도 ‘죽지사’가 등장하기에, 이 기록 ‘죽지사’는 현행 12가사 중의 하나인 ‘죽지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가사를 평양 기생이 불렀다는 부분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리 기생의 경우 가곡 가사와 시조를 먼저 배워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도소리 문화재였던 김정연 명창(중요무형문화재 제 29호, 1913-1987)도 어릴 때 이승창에게 가곡 가사를 먼저 사사했다고 증언했던 것을 보면 이 같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진주목사를 지낸 정진석이 지은 진주 교방의 여러 가무악곡을 수록한 『교방가요』에도 가곡, 가사, 시조, 잡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전국 어디서나 교방에서는 시조, 가곡가사, 잡가의 순으로 교육을 했던 것이다. 지금처럼 가곡사사, 경기소리, 서도소리를 구분하여 각각 전승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특히 문화재 제도가 정착된 뒤 각 장르별 고착 상태는 더 심해졌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현행 ‘죽지사’의 사설이다.

건곤(乾坤)에 불로월장재(不老月長在)하니 적막강산(寂寞江山)이 금백년(今百年)이로구나

책 보다가 창(窓) 퉁탕 열치니 강호(江湖) 둥덩실 백구(白鷗) 둥 떴다

하날이 높아 궂은 비 오니 산(山)과 물과는 만계(萬溪)로 돈다

낙동강상(洛東江上) 선주범(仙舟泛)하니 취적가성(吹笛歌聲)이 낙원풍(落遠風)이로구나

(후렴 제외)

현재 가사로 불려지는 ‘죽지사’는 조선 숙종, 영조 때의 문신인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대이태백송죽지사(代李太白魂誦竹枝詞)>에서 일부분을 따 가사 형태로 만든 노래이다. 4절로 불리고 있는데, 가사 중에서 “하날이 높아 궂은 비 오니 산과 물과는 만계로 돈다”는 구절은 1910-1920년대 출판된 『정선조선가곡』 등 여러 잡가집에는 보이지 않는 구절이며, ‘죽지사’ 전체 내용과도 상관이 없다. 다만 이용기가 지은 『악부』에만 이 구절이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면 1920년대에 누군가가 이 구절을 집어넣어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누가 왜 그랬을까?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착각에 의해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 착각이 관습으로 굳어져 현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많다. 하늘이 높아 궂은 비가 온다는 것도 사실은 논리적으로 어긋난 표현이다. 때문에 현행 ‘죽지사’ 가사 중 이 부분은 삭제함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차리리 『정선조선가곡』에 나오는 대로 “기경선자낭음과(騎鯨仙子朗吟過)하니 망양추색(茫洋秋色)이 미장천(迷長天)이라”는 구절을 삽입하고 지금의 “하날은.....” 부분은 빼는 것이 훨씬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 많이 변형되고 추가되면서 본래의 가사를 잃어버린 죽지사의 사설을 복원하고 정리해 제대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09년 5월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서울가악회에서 남성 명창들이 죽지사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진=네이버 캡처)

하기야 ‘죽지사’의 마지막 구절 “낙동강상 선주범하니 취적가성이 낙원풍이로구나”도 도암의 ‘죽지사’와는 관계없다. 낙동강에 놀이배가 떠서 피리와 노래 소리가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퍼져간다는 뜻의 이 구절은 선조 때의 선비 노인(魯認)의 『금계일기』에 있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구절이 노인의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과거 선비들이 시로 화답할 때 과거의 다양한 시에서 차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마도 이 구절은 더 오래된 누군가의 시에서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하간에 현행 ‘죽지사’의 가사는 누더기 같다. 누군가 눈 밝은 사람이 있어 이 사설을 복원하고 정리해 다시 불렀으면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전통의 올바른 계승이다.

 

※ 하응백 서도소리 진흥회 이사장은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옥봉의 몽혼’(2009)등 20여 권의 편저서가 있으며 ‘창악집성’(2011)이라는 국악사설을 총망라한 국악사설 해설집을 펴내기도 했다.

2002년 ‘휴먼앤북스’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하 이사장은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으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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